전체 글1293 낯선 숙소, 고요함이 건네는 마음에 대한 생각 내일 진행할 강의를 위해 저녁 무렵 나주로 출발했다. 든든히 저녁을 먹고 내려오는 길에 어김없이 묵직한 피곤함이 밀려온다. 요즘 장거리 운전을 하다 보면 유독 식곤증이 자주 올라와, 무리해서 달리는 대신 휴게소 같은 곳에 들러 짧게 눈을 붙이고 다시 운전대를 잡곤 한다. 잠깐의 멈춤이 안전한 길을 만든다. 그렇게 어둠을 뚫고 도착한 숙소의 정경은 온통 컴컴하다. 시내에서 떨어진 교육원 시설이기에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조용해도 너무 조용하다. 숙소 건물 안에 들어와 있는데도 다른 방에 누가 머물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고, 복도를 오가며 돌아다니는 분들조차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고요한 방 안에서 마주한 퇴직자들의 '심리적 어둠' 인적 없는 고요한 공간에 홀로 앉아 생각에 잠기다 보니.. 2026. 11. 4. Hodie mihi, cras tibi: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 퇴직자들을 위한 강의안을 작업하다가 문득 어제 들었던 한 문장이 머릿속을 스친다. "Hodie mihi, cras tibi (호디에 미히, 끄라스 띠비)." 라틴어로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라는 뜻이다. 어제 우연히 귀에 들어왔던 이 오래된 경구가, 오늘 퇴직자 강의안을 쓰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며, 기쁜 일을 겪기도 하고 때로는 견디기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그 흐름 속에서 누군가에게 오늘은 새 출발이라는 설레는 시간이 되기도 하고, 또 누군가에게는 평생 익숙했던 자리에서 물러나 낯선 길을 찾아야 하는 날이 되기도 한다. 원래 이 라틴어 문장은 삶의 유한함을 일깨우는 엄숙한 말이지만, 오늘 나에게는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퇴직의 시.. 2026. 11. 3. 소통이 막힐 때 필요한 태도, 일방적 확신과 맥락을 묻는 질문 프리랜서로 살아가다 보면 주말과 평일의 경계가 흐려져 '휴일'이라는 개념을 잊은 채 살곤 한다. 그런 나에게 유일하게 온전한 쉼표를 찍는 시간은 주일 미사에 참례하는 일이다. 오늘 미사 중 강론 시간에 흥미롭게도 '인공지능(AI)'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사제가 신자들과 나눈 대화를 소개해 주셨다. 신자들이 "신부님, 요즘은 AI가 다 알려줘요. 신부님이 어떤 이야기를 하셔도 저희가 모르는 게 없어요"라고 하자, 그 사제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그럼 거기에 제 이름을 한번 넣고 찾아보세요." 신자가 이내 스마트폰으로 실행한 화면을 보더니, 사제는 "보세요, 실제와 정보가 다르지요? 인공지능이라고 하는 것은 이처럼 정보가 취약합니다. 데이터를 분석해서 알고리즘을 사용할 뿐이니 믿고 사용하면 안.. 2026. 11. 2. 사막의 오아시스 같았던 건빵의 유혹, 그리고 흔들리는 하루를 잡아준 단 하나의 습관 어제 좋은 사람들과 기분 좋게 기울인 한잔 술의 여파가 오늘 하루를 꽤 힘들게 한다. 아침부터 숙취가 제대로 깨지 않아서인지 머릿속이 온통 안개가 낀 듯 멍한 느낌이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습관처럼 체중계에 오른 순간, 어제의 일이 깊은 후회로 밀려왔다. 그동안 열심히 식단을 조절하며 다이어트를 진행했는데, 단 하루 사이에 몸무게가 훅 하고 올라와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 동안 애써온 노력인데 하루저녁에 이렇게 허무하게 올라오다니...' 나 자신의 나약함이 원망스러워 절로 깊은 한숨이 나왔다. 곰곰이 돌아보면 나는 술이 어느 정도 들어가면 먹는 것을 멈추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술을 원래 잘 못 마셔서 그런가 싶다가도, 이제는 아예 고질적인 습관이 되어버린 듯하다. 사실 어제 저녁 식사를 하면서는 안.. 2026. 11. 1. 이전 1 2 3 4 ··· 32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