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는 조직 명함 대신 내 이름으로 말하는 시간이다.

  퇴직을 앞두고 가장 먼저 했던 일을 떠올려 봅니다. 명함지갑에 두둑이 쌓인 명함들을 비우는 일을 했었네요. 조직이 싫어서가 아니라, 더 이상 '조직의 이름표'가 나를 설명해 주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알아서였나 봅니다. 지갑 틈새로 빠져나온 사각의 종이들이 내가 조직이 있으면서 '이름과 직책'이라는 얼굴이었습니다. 그 명함으로 무수히 많은 이들과 악수를 하고 소통을 했었습니다. 명함을 정리하고 마지막 퇴근길 집으로 돌아오던 길은 왠지 낯선 공간을 들어서는 듯했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속삭였습니다. "이제 내 이름을 써야겠구나." 결국 나는 기념으로 두 세장으로 남기고, 모두 쓰레기통으로 던져졌습니다.

 

  사라진 명함에 이상할 정도로 입술을 다물고 있던 나를 발견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뒤에 어떤 말을 붙여야 할지 어색하기만 하더군요. 그래서 붙은 것이 전직이라는 말이었나 봅니다. 직함이 사라진 자리에는 당황하는 모습만이 남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직함이라는 갑옷을 벗은 채 낯선 광장에 서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그 시기가 길어질수록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뒤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제 내 사업자를 내야 한다는 생각에 고민을 했습니다. 내가 하는 일을 잘 표현할 간판에 적힐 이름을 생각했지만 촌스러울 뿐이었습니다. 지금도 매일 사업자를 어떻게 바꾸어야 하나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백근시대"라는 사업자를 내고 나서, 이제는 사업자 명이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 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며 조언들을 해 주고 있습니다. 그렇게 상호를 다시 고민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더 이상 조직의 우산 아래 있지 않고, 제 이름으로 계약서를 쓰고, 제 가치관으로 사람을 만나는 시간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사업자에 들어갈 로고를 채우고, 직함 란에 '대표'라는 두 글자를 적으면서, 그 뒤에 제 이름을 넣었습니다. 새 명함이 손에 닿는 순간, 그동안 가지고 있던 무게와 다른 무게감이 내게 다가오더군요. 이제는 조직의 성장이 아니라 제 삶의 방향을 소개하는 표지가 되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명함을 정리했던 나는 '소속의 시대'에서 '자립의 시대'로 넘어가는 의식이었나 봅니다. 직함은 잃었지만, 저는 스스로를 어떻게 부르면 좋을지에 대한 자유를 얻었습니다. 

 

  여러분은 만일 명함을 내려놓아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새로 써 넣고 싶은 이름이 무엇인가요? 타인이 알아봐 주기를 바라는 화려한 직책이 아니라, 스스로를 가장 생생하게 묘사할 수 있는 단어는 어떤 것일까요? 노트 한 켠에 그 이름을 크게 적어 보시기 바랍니다. 언젠가 그 이름이 당신의 새로운 명함이 될 때, 얼굴 대신 빛나는 당신의 이야기를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서울에서 게이미피케이션을 마치고 내려오는 지하철에서 함께 수업을 들은 코치님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조직에 있으면서 미래를 준비하고 설계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전직지원 컨설팅을 하는 분이라 더욱 현실적인 말씀이었습니다. 조직에 있으면서 허송세월을 보낸 뒤에 뒤늦게 진행하다 보면 저처럼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나마 저는 제가 하고 싶은 일에 빠르게 적응해 가고 있지만, 어떤 분은 어렵게 적응해 가며 힘들어 하고 있는 모습도 종종보게 됩니다.

 

  시간이 지난 지금, 여전히 명함을 건네고 주고받습니다. 명함의 무게보다 제 눈빛과 목소리가 상대를 향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많이 흘러 그때의 일은 지워질 것 같지만 지금도 여전히 과거에 남아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자신의 이름에 향기를 담을 수 있는 시간을 준비하고 만들어 가야 합니다. 누가 당신을 묻기 전에 스스로에게 묻고 답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어떤 이름으로, 어떤 이야기를 건넬 것인가?" 그 대답이 인생의 후반전에 당신의 명함 제목이 될 것입니다. 

 

https://bit.ly/HappyGrowth

백근시대

지금은 백근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