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이라는 영화를 보고 왔다. 각색을 했다고는 하지만 대부분 현실과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다. 영화관을 나오면서 나도 모르게 내 안에 물음을 하나 던졌다. 그것은 나 자신의 삶에 대한 질문이었다. '나는 정의를 어떻게 이해하고 살고 있는가?' 쉽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중고생시절 정의를 불태우는 대학생들의 모습을 그저 지켜만 보았다. 정작 나는 무엇이 정의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 잘 몰랐다.
나는 20살부터 가장이었고, 가족의 생계를 지는 사람이었다. 만일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집안은 어려워지고, 그 고통과 상처는 고스란히 내 몫으로 남았을 것이다. 그래서 정의의 목소리를 듣고도 참고 견디는 삶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핑계야'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 시절의 나는 그게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나는 여전히 가장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사뭇 다르다. 이제는 내 안에 들여오는 정의의 목소리들을 조용히 꺼내고 있다.
정의라는 단어는 무겁게 다가오기도 한다. 마치 법정이나 역사책에서나 등장할 법한 단어들이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며 다시 한번 마음의 음성에 집중했다. 정의는 삶의 많은 곳에 스며들어 있다. 내가 정의로운 것은 아니지만, 정의로워지려고 노력하는 사람이고자 한다. 작은 목소리를 내어 세상을, 종교를 조금씩 바꾸어 가는 것. 그것이 정의의 실천이라고 믿는다.
목소리를 내는 것의 힘
우리는 '내가 목소리를 낸다고 해도 아무런 영향도 없을 것이야.'라고 침묵을 선택한다. 나 역시 그런 삶을 살아왔다. 그러나 역사는 작은 사건들, 작은 목소리들을 모아 거대한 변화를 만들어 왔다. 정의는 조용하지만 단호한 거절의 표현일 수도 있고, 격려와 지지의 말일 수도 있다. 직장에서는 부당한 대우를 받는 동료를 위해 한마디를 할 수 있는 것. 지역 사회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목소리를 내는 것. 종교 안에서는 잘못된 권위에 조심스레 문제 제기를 하는 것. 이 모든 것들이 정의이다. 내가 목소리를 낼 때,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이들과 연결이 된다. 그렇게 마음속 깊은 속의 울림이 정의라는 저울에 합당하다면 작은 용기로도 소리를 낼 수 있다.
좋은 방향으로 이끄는 작은 실천
정의라고 하는 것이 거창하거나, 신념이 아니다. 정의는 구체적인 행동에 의해 실현이 된다. 주변을 좀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는 당위성이 있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정의라고 해도 좋은 방향이 아니고, 부당한 것이라고 하면 안 하는 것이 좋다. 정의라고 하는 것은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작은 배려, 환경을 생각하는 소비, 공정한 거래를 지향하는 선택들이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힘으로 작용한다. 예를 들어 대형마트 대신에 동네 마트를 이용하는 것이다. 대형마트에 가면 다양한 물건들, 저렴한 가격에 구매를 할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과소비를 만들기도 한다. 필요하지 않은 물건들도 구매하는 경향이 있어서이다. 동네마트는 규모도 작고 가격도 조금 비쌀 수 있다. 이런 선택은 지역 상인의 생계를 살리고, 과소비를 줄이는 작지만 강한 정의의 실천이 된다.
종교 안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종교지도자들의 권위에 무비판적으로 순응하는 태도는 정의를 실천하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그건 잘못된 것입니다.'라는 작은 외침이 있어야 한다. 그런 외침들이 쌓이면서 좋은 방향으로 종교도 변화해 갈 수 있다. 그것의 시작은 작은 외침이고, 그 작은 실천이 만들어 가게 한다. 정의는 '이게 맞다.'라고 외치는 것만이 아니다. '이게 공동체를 위한 좋은 방향인가?'를 묻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약자를 위한 안전한 공간이 있는 사회
영화를 보고 가슴에 닿는 부분은 힘이 없고, 어려운 이들이 쉴 수 있는 곳에 정의가 살아 숨 쉬어야 한다는 것이다. 독재는 정치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종교 안에도 보이지 않는 독재들이 존재하고 있다. 그것을 신앙인들은 잘 보지 못한다. 그것이 진리인 양, 착각하며 침묵 속에 순응한다. 진정한 종교의 모습은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한 공간이어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양냄새나는 목자'가 되라는 말씀을 하셨다. 종교 지도자들의 몸에서 달콤하고, 향긋한 냄새, 좋은 냄새가 난다는 것은 그만큼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보살피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금도 많은 이들은 안전하게 기도할 공간조차 가지지 못한다. 돈도, 권력도 없는 사람들에게 조차 열린 공간이 필요하다. 과거의 명동성당처럼 말이다.
정의는 거대한 명제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일상에서 묵묵히 실천하는 태도에 있다. 오늘 내가 내는 작은 목소리는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누군가의 마음에 울림이 되어 또 다른 목소리를 낳을 수 있다면, 그것은 분명 정의를 향한 길이다. 나는 지금, 비록 작고 떨리는 목소리지만 그 소리를 내고 있다. 나의 작은 목소리가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진 이들에게 닿기를 바라고 있다.
백근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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