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요즘 읽고 있는 책이 『미움받을 용기』이다. 이 책을 1/3쯤 읽다가 말았다. 책의 내용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이 책의 제목처럼 과연 내 삶에 미움받을 용기는 무엇인지? 속초를 향해 달려오는 차 안에서 생각에 잠겼다. 미움받을 용기는 타인의 감정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가치와 신념을 위해 때로는 불편해도 그것을 말할 수 있는 용기라는 생강이 들었다. 그런 옳은 이야기를 할 때 분명 반대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옳지 않은 것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조직과 사회에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이는 개인의 성향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과정에서는 꼭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이 된다. 꼭 옳은 것만을 위해서만 하는 행동은 아니다. 때론 불합리한 부분도 있을 수 있다. 잘못된 관행을 저지를 때 침묵을 깨고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 이런 목소리에 '미움'이라는 낙인이 찍히고 만다. 이렇게 한 번 낙인이 찍히면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가 되기도 한다. 한국의 현대사를 보면 확연이 드러난다. 고립되고, 비난도 받았지만, 명확한 근거와 신념에 기반한 목소리를 낸 덕분에 민주화가 이루어진 나라로 추앙을 받고 있다.
미움받을 용기의 발현
나의 성향은 잘 참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조화를 중시하고 관계가 틀어지는 것을 잘 견디지 못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참는 것이 한계에 다다르면 어떤 방법으로라도 의사를 전달하고 그것에 대한 소소한 투쟁을 한다. 이런 것은 일반적으로 조직에서는 어려워한다. 자신의 목숨을 쥐고 있는 듯한 리더들을 만나면 더 그렇게 된다. 매일 함께 얼굴을 맞대고 살아가야 하는데 불편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서 일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의사를 표출하면서 미움받을 용기를 내는 일은 퇴사를 결심한 순간이거나, 리더가 대단한 잘못을 했을 때 발현이 된다.
조직에 있으면서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나는 그래도 한 번씩 리더와 부딪혔다. 미움받을 것을 알면서도 직원들의 복리와 후배들의 의견을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실력을 쌓아야 했다. 최소한 리더 정도의 지식이 있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을 했다. 그렇다고 리더를 이겨먹기 위해 행동했던 것은 아니다. 항상 불합리한 부분에서만 그렇게 부딪혔다. 다른 상황에서는 최대한 리더의 의견을 존중했다. 심지어 결정이 난 사항에 대해서는 리더를 대신해서 직원들에게 욕바지가 되기도 했다. 안에서는 치열하게 리더와 논쟁을 하고 부딪히고, 현장에서는 직원들에게 리더의 의견을 전달하면서 내가 전달하는 듯한 인상을 주었기에 오히려 내게 불만과 원성을 보냈었다.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리더와 나는 더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미움을 받아서이다. 그 과정에서 나는 한 가지를 얻었다. 신념에 대한 확신이 있었고, 옳은 일이나 불합리한 것을 보게 되면 희생을 감내하고서라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변화를 위한 미움받을 용기의 필요성
세상이 변하고, 종교가 변하고, 사회의 모든 영역이 변화하는 시대에 살면서 변화를 거부하고 과거의 모습에 안주하는 이들을 보게 되면 미움받을 용기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변화는 편안함을 거부하는 것이고, 기존의 관성에 도전하는 데서 온다. 특히 종교 안에서는 더 그렇다. 종교는 몇천 년을 내려오면서 항상 소용돌이의 중심에 있었다. 중세의 십자군 전쟁, 장미 전쟁을 비롯한 많은 전쟁들이 종교전쟁이었다. 그런 종교 전쟁을 거치면서 유럽은 변화를 했다. 하지만 아시아는 공자나 맹자의 사상이 뿌리내려져 있고, 스님들에 대한 존경심이 가득한 곳에 있다 보니, 종교 안의 지도자들은 고자세를 유지하고, 신앙을 가진 이들은 저자세로 임한다. 미움받을 용기를 내어 한마디를 하게 되면 이들이 종교인인지, 일반인 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미움과 비난의 화살을 날린다. 그들은 불편해서이다. 내란을 일으키고, 자신의 본분은 국민을 잘 지키는 것임에도 국민을 버리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사는 이들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신앙을 지키고, 본연의 의무인 가난하고, 어렵게 사는 이들을 보살피는 것보다 그저 지금의 생활에 안주하고, 뻔지르르한 건물에만 온 신경을 다 쓰고 있는 모습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러면서 똑같이 국민을 버린 이들을 욕한다. 자신의 모습은 보지 못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미움을 받을 것을 알면서도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언젠가는 이런 나의 마음을 알아줄 이들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이다. 역사를 돌아보면, 당대에는 미움을 받았지만 후대에 존경을 받은 인물들이 많이 있다. 그들의 공통점은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라, 명확한 근거와 신념을 바탕으로 행동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움받을 용기를 발휘할 때는 근거와 명확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함부로 섣불리 움직이면 역공을 당해 피폐한 삶을 살아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미움받을 용기는 무모한 도전이 아니라 선택하는 것이다. 개인의 성향과 상황을 고려해야겠지만, 진정으로 옳다고 믿는 것을 위해 불편한 것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개인적 감정은 접어야 한다. 그 감정에 휩싸이게 되면 깊은 곳에 있는 것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드러난 사실도 있을 수 있지만 깊은 내면에 있는 것까지도 볼 수 있는 혜안을 가져야 한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더 나은 종교를 만들어 가고, 더 나운 사회를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감수해야 할 대가 인지도 모르겠다. 미움받을 용기를 통해 밝은 빛으로 나아가리라 본다.
백근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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