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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근시대의 삶(50대의 하루의 삶)

쌓여진 낙엽을 보니 자녀들이 떠오른다.

by Coach Joseph 2023. 1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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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북이 쌓여만 가는 낙엽을 보며 자녀들과의 쌓인 찌꺼기가 언제나 청소가 될지 라는 생각이 우울하게 한다. 즐겁고 행복하게만 보냈던 아이들과의 관계가 사춘기를 겪으면서 전혀 다르게 가고 있다. 작은 아이가 더 심하다. 큰아이는 큰 고비가 없이 지나갔다. 물론 큰아이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지 모른다. 그 시기에 잠시 그랬던 것 같은데 작은 아이는 유독 시간이 많이 간다. 3년을 내내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작은 이야기만 해도 아빠가 잘못한 것 같은 느낌일 뿐이다. 좋은 방향으로 가길 원해서, 학생으로서 해야 할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노답이거나 개미 목소리만큼 작은 목소리로 답을 하곤 한다. 가슴에 수북이 쌓이는 것들을 어떻게 청소를 할지 고민이다.

단풍과 낙엽

 

  붉게 물든 나뭇잎이 바람을 맞으며 하나둘씩 바닥으로 떨어지고 흩날리다 한쪽켠에 쌓이고 있다. 어릴 적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은 온 데 간데없고, 오로지 아빠에게, 엄마에게, 할머니에게 상처만 있다고 한다. 부모는 참 어려운 존재이다. 잘 되길 바라는 맘으로 던지는 이야기들은 잔소리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도대체 어느 선까지 부모가 인내하고 지내야 하는지 참으로 답답함이다. 이용의 '잊혀진 계절'의 노래가사가 떠오른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10월의 마지막 밤을~~~" 나도 기억하고 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 장난치고 짓궂던 모습, 다정히 전화하던 모습들이 떠오른다. 어디에서부터 단추가 잘 못 꿰어져 버린 것인지 모르겠다.

가슴에 수북이 쌓이는 것들을 어떻게 청소를 할지 고민이다.
쌓여진 낙엽

  웃음의 시간과 침묵의 시간

  나뭇가지에 있는 잎사귀들의 지나온 시간들을 보라. 그들은 봄부터 연한 연녹색의 새잎부터 시작되었다. 어린아이의 뽀얀 살을 보는 것처럼 제일 예쁠 때이다. 나의 아이들도 그랬다. 팔불출 소리를 들을지는 몰라도 세상 어디에 내놓아도 그렇게 이쁠 수가 없었다. 언제나 아빠와 함께 장난을 치고, 사진을 찍고 아빠의 이야기에 그래도 말을 들어주었던 아이들이었다. 어릴 적 그렇게 볼을 쪽쪽 빨 정도로 스킨십도 많이 하고 장난도 많이 쳤다. 그렇게 보내온 시간들이 다른 시간으로 변하고 있다. 아침부터 창문너머로 울어대는 풀벌레 소리들, 하늘의 태양은 지면을 불태워 버릴 정도의 강렬한 빛을 뿜어대기 시작한다. 연녹색의 잎사귀가 진녹색으로 변화되는 순간이다.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면서 변하기 시작한 것 같다. 목소리는 굵어지고 자신만의 세상이 옳은 듯 무슨 말을 하면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렇게 장난을 하고 늦게 퇴근하는 날이면 언제나 전화로 "언제 와! 몇 시에 와!"라고 물어보던 녀석은 이제는 집에 와도 "다녀오셨어요"라는 짤막한 외마디의 말만 남긴 채 말이 없어진다. 먼저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지만 귀찮은 듯 개미 기어가는 소리로 짤막하게 이야기하고는 답이 없다. 무엇이 불만인지 물어보아도 묵묵부답이다. 입에 접착제를 붙여 놓은 것처럼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다. 그냥 듣고만 있는 것이다. 가슴에서는 속이 터져 나가는 중인데도 인내를 하며 보낸다. 달라지려 한 달을 장난스럽게 이야기해보고기도 하고 다른 이야기도 하지만 잠시 뿐이다. 어느 순간 조용함만이 흐를 뿐이다. 오로지 들려오는 소리는 거실에서 게임, 헬스, 랩 등 TV 소리만 들린다. 혹 그런 소리가 안 들리는 가 싶으면 노트북과 휴대폰을 번갈아 보는 것이다. 

 

  자식은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기다리라고만 한다. 질풍노도의 시기이니 조금만 시간을 더 주자고 한다. 한없이 자신만의 세상에서 헤매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양쪽으로 주차된 공간에 서로 앞뒤로 움직일 수 없는 상태로 있는 것처럼 답답하기만 하다. 이럴 때 모든 게 아빠의 잘못이라는 주변의 인식이 나를 더 힘들게 한다. 코칭을 배우면서부터는 더 아이와의 대화의 결이 달라지고 있다. 소통을 위해 잘 들으려고 한다. "그렇구나!! 그런 맘이구나!!"라고 이야기를 해보지만 그것도 싫다는 것이다. 그렇게 말하면 더 대답하기 싫다고 한다. 시간을 더 주어보자면 1년 이상을 상관하지 않아도 보고 때론 공감도 해줘 보고 때론 "미안하다"라고 사과까지 해 보았지만 묵묵부답이다. 제일 힘든 시기이다.

 

 

  프로그램들이 도움이 될까?

  주변의 사람들은 아빠의 잘못이라며 이야기를 한다. 다양한 부모교육 프로그램들도 본 적이 있다. 좀 더 아이와 관계를 개선하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그럼에도 내게 문제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번아웃이 되면서 집에서는 거의 새까만 구름과 폭풍우만 몰아쳤던 시간들이었기 때문이다. 코칭을 하는 순간에만 버틸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그래서 가족과 재미있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려고 퇴직 후의 시간을 프리하게 지내고 있다. 조금 나아진 듯하던 태도도 다시금 예전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직 마음의 문을 못 열었거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서 다시 다짐도 해보지만 쉽지만은 않다. 아빠도 이런 순간에는 상처를 받는단다라고 이야기하고 싶지만 아이의 다른 상처를 또 입고 입을 닫을까 걱정도 된다. 모든 아빠들이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잘 보내고 있는 집들도 많을 것인데 왜 내게 이런 시련이 있는 것일까? 단련시켜서 무엇을 더 하게 하려는 것일까? 다른 부모들은 어떤 마음들로 살아갈까? 프로그램들이 과연 도움이 될까? 등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간다. 대게 주변의 가정을 보면 비슷하기는 한 듯하지만 그래도 나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은 마음이 많아서 인지도 모른다.

 

  이제는 잎사귀에 붉은색, 노란색들이 물들어 가고 있다. 지금의 모습이 어떤 모습으로 물들게 될지 걱정이 되어서 더 조바심을 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녀교육 프로그램이 많이 있다. 아니 어쩌면 부모교육 프로그램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 프로그램에 대한 나의 생각은 부정적이다. 유튜브를 통해 전달되는 것들을 보면 굉장히 자극적인 부분들만 편집이 되어 있다. 그런 부분만을 바라본 청소년들은 어떤 생각을 가질까? 부모님들은 다 잘 못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물론 TV속에 나오는 부모들에게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부모들도 잘못이 있다고 생각한다. 청소년기에 아지 가치관이 형성되지 않은 아이들이 바라보면 당연한 것이다. 청소년기의 아이들은 그게 기준이 된다. 그래서 나는 그런 방송을 싫어한다. 잘못된 내용이 아니다. 유명한 전문가가 조언을 하고 맞는 이야기를 하고 나도 공감 가는 부분이 상당히 많이 있지만 아이들은 단편적인 면만을 본다. 내 아이만 해도 그런 것이 "아빠 OOO 안 보셨어요?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하잖아요?" 앞뒤 상황 문맥을 무시하고 단순히 그것만을 가지고 그걸 하면 안 된다고 한다. 시간이 지난 이야기라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 말을 듣고서 나는 놀랐다. 전혀 다른 상황에 아이에게 이것은 해야 한다고 했는데 그런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중요한 핵심내용이 배제되어 진채 방송에서 아이의 상처만 어루만져 주는 모습이 청소년들에게는 좋았나 보다. 프로그램이나 조언이 지금 상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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