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통일에 대한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학교에서 배웠던 내용으로 김유신과 김춘추를 영웅처럼 생각하고 살아왔다. 그리고 삼국통일이라는 말을 앞에 붙여 사용하였다. 역사서를 좋아하고 역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한국사에서 어쩌면 가장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이지는 모르지만 내 안에서 삼국통일이라는 단어는 어색하기만 했다. 실제로 삼국을 통일한 것이 아니어서 이다. 당나라가 고구려의 대부분을 장악했고, 신라는 겨우 일부분을 가졌기 때문이다. 또한 자주적인 통일이 아니라 당나라라고 하는 중국의 힘을 빌려 통일을 이루었기에 '통일'이라는 단어가 주는 힘이 없다고 느꼈었다. "만일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다면 한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라는 질문과 가정을 두고 생각해 본다.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다면, 정치, 문화, 지리적 경계 등에서 다양한 변화를 불러왔을 것이다. 고구려는 광대한 영토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삼국 중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다. 중국 대륙에서 조차도 함부로 할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었고, 고구려라는 자체만으로도 동북아시아의 중요한 세력 중에 하나였기 때문이다.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다면 한국사에 큰 흐름을 가져왔을 것이다. 고구려는 지리적으로 한반도 북부와 만주 지역에 걸친 기반을 가지고 있었고, 영토도 광범위했다. 고구려는 외세에 대한 강력한 방어력과 독자적인 문화를 발전시켜 왔기 때문이고, 고구려 주도의 통일은 한반도와 그 주변 지역의 문화적, 정치적 풍토를 깊이 변화시켰을 가능성이 크다.
신라의 영웅들은 진짜일까?
삼국을 통일했던 김춘추와 김유신은 정말 위대한 영웅일까라는 의문이 든다. 그 당시 정세를 살펴보면 신라는 힘이 없는 약소국에 지나지 않았던 신라가 반쪽 짜리 통일이지만 신라의 발전과 통일에 기여한 공로를 높이 사야 한다는 것에는 이의가 없다. 김춘추는 당나라와의 동맹을 통해 신라의 우위를 확보했고, 김유신은 백제와 일부 고구려를 상대로 무력으로 승리를 이끌었다. 이 과정에서 많은 희생들이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비겁한 행위는 바로 어린 화랑들의 죽음이었다. 물론 그 당시에는 그런 일들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이미 군사력으로 5만의 대군을 가진 김유신이었다. 하지만 고작 5천의 병력을 가진 계백에게 밀리는 형국이었다. 이것을 극복하는 것은 군의 분노를 끌어올리는 일 밖에는 없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김유신의 친동생인 김흠순의 아들 '반굴'을 출전시키지만 죽음을 당한다. 이번에 좌장군 김품일의 아들 '관창'이 출전한다. 그 관창을 본 계백은 차마 죽일 수가 없어서 사로잡아 돌려보낸다. 하지만 김유신은 다시 나가게 한다. 역사서에는 '관창'이 죽기를 각오하고 다시 출전했다고 본 것 같다. 그것은 승자들의 역사서이고, 황산벌 전투의 승리의 원동력이 되었던 사건과 미성년자인 아이들의 뒤에 숨어서 진두 지휘했던 장수들의 비겁함을 감추기 위함이라고 밖에는 생각이 되지 않는다. 어린 관창의 죽음은 신라군의 사기를 끌어올려 결국 계백 군을 물리치게 된다. 과연 이것이 영웅의 행동인가? 영웅은 항상 앞에서 싸웠다. 다른이 보다 한 발 더 나아가 있었고, 치마폭에 숨은 것처럼 숨어 있지 않았다.
자신의 안위가 아닌 부하들의 안위를 생각하는 장수가 바로 영웅이라고 생각한다. 이순신 장군을 보면 어떤가? 그는 항상 부하들의 안위를 걱정했고, 명량해전에서는 나아감에 있어 주저하지 않았다. 내게는 아직도 12척의 함선이 있다는 말을 하는 것처럼 이순신 장군은 적과의 만남에 두려움 없이 전진했다. 그리고 항상 맨 앞에 있었다. 이게 영웅이 아닌가? 당나라를 자신들과 동맹을 맺었다고 하지만 김춘추가 한 것이 아니다. 그저 당나라는 고구려만 무너뜨리면 되었던 것이기에 동맹이라는 말을 썼을 뿐이다. 이미 당나라의 마음속에는 백제와 신라는 없었다.
비겁한 행위도 있었다. 어린 관창이 죽을 것을 알면서도 나라의 이익을 위해서 사지로 내몬 것은 김유신이었다. 이를 보고 역사자들은 무엇이라고 할까? 역사를 설명하는 유명한 사람은 관창의 죽음을 대면하는 아버지를 연기하며 눈물을 붉혔던 장면이 있다. 과연 그 눈물은 아버지가 아들을 잃어버린 것에 대한 눈물인가? 관창은 고작 16살이었다고 한다. 과연 이 역사를 신라의 멋진 역사라고 말할 수 있는가? 16살 전후의 아이들을 신라군의 사기를 위해 분노심을 불어넣기 위해 희생했던 것이다. 어느 역사에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무예가 아무리 출중하다 해도 상대는 계백이다. 백제의 영웅이고, 그는 자신의 10배가 넘는 군대와 배수의 진을 치고 있는 군대이다. 이런 군대에게 어린 관창은 종이칼을 쥐어주고 싸움을 하는 것과 같다. 얼마든지 다른 경우가 있지만 김유신은 알면서 이를 묵과했다. 만일 군세가 반대였다면 어땠을까? 그렇다면 조금이나마 이해해 줄 수 있었을 것이지만 김유신은 비겁한 승자의 역사가 만들어낸 영웅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삼국을 고구려가 통일했다면?
고구려가 통일했다면, 한반도와 만주 지역을 아우르는 강력한 중앙집권적 국가가 형성되었을 것이다. 이미 많은 영토와 강력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주변 국가들에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당 태종 이세민이 고구려를 침공했지만 고구려는 안시성에서 당을 물리친다. 이미 거대 국가로 자리 잡은 당나라에 맞서 싸워 이겨낼 정도의 군사력을 가진 나라를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북쪽으로 확장된 국경을 가지고 만주와 한반도를 포괄하는 넓은 영토를 지배했을 것이다. 다양한 문화적, 정치적 흐름을 통합하면서 고려나 조선보다 더 굳건하고 강력한 나라를 만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고구려의 통일은 외교에도 커다란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중국과 치열한 경쟁 관계에 있었고, 독자적인 문화와 정체성을 유지하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고구려 멸망 후의 대조영의 발해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동북아시아의 맹수로서 자리매김하고 대제국을 만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사의 흐름도 지금의 방향과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있었을 것이다. 또한 강력한 군사력뿐만 아니라, 독자적인 예술과 건축, 언어, 종교 등을 발전시켜 온 국가가 되었다고 본다. 백제와 신라의 문화를 결합하고, 고구려 중심의 문화에 플러스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고구려 문화는 장엄하고 웅장한 건축 양식을 갖추고 있었다고 보았다. 이는 삼국을 통일한 후, 한반도 주요 도시와 사찰에 반영되었을 것이고, 통일 국가의 중요한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고구려가 통일을 했다면 세종대왕이 한글 창제는 없었을 것이고 위대한 언어를 가지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전혀 다른 문화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었겠지만 적어도 대한민국이 이렇게 힘이 없고 영향력 없이 많은 것들을 주변국에 빼앗기는 것만은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고구려의 통일은 중국과의 대등한 관계에서 외교관계를 가능하게 했을 것이다. 통일 이전에도 중국의 많은 나라들이 고구려와 적대시하는 것을 두려워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만큼 강한 나라였던 것만은 사실이다.
고구려가 통일한 한반도는 동아시아 해상 교역의 중요한 역할을 하게 했을 것이다. 지리적 요인을 바탕으로 중국과 일반의 경제적 교류의 요충지 역할을 했을 것이다. 또한 동아시아의 경제적, 문화적 교류가 더 활발하게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을 것으로 본다.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다면, 동아시아의 국제 관계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고, 중국과 대등한 외교 관계뿐만이 아니라, 동아시아 해상 교역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했을 것이다. 고구려의 문화적 영향력은 일본을 비롯한 주변 국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요즘 나라에 힘이 없어 이것도 저것도 빼앗기는 것 같아 상상을 해보고 글을 적어본다.
삼국통일을 이루었던 신라의 역사와 그 과정에서의 영웅들은 당시의 정치적, 군사적 현실 속에서 만들어진 결과물이었다고 본다. 김유신과 김춘추는 그들의 시대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그들의 행위가 진정한 영웅적 행동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특히, 어린 병사들의 희생을 통해 전쟁에서 승리하려 했던 김유신의 행동은 영웅보다는 승자의 논리에 의해 미화된 측면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신라가 이루었던 삼국통일은 당나라의 지원에 의한 반쪽짜리 통일이었다는 점에서, 자주적 통일로 보기 어렵다. 반면,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을 경우, 한국사의 흐름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고구려는 강력한 군사력과 넓은 영토를 가지고 있었고, 독자적인 문화와 정체성을 발전시켰다. 고구려 주도의 통일이 이루어졌다면, 한반도와 만주 지역을 아우르는 강력한 중앙집권적 국가가 형성되었을 것이며, 동아시아에서 중국과 대등한 외교 관계를 유지하며 더 큰 영향력을 행사했을 것이다. 고구려의 통일은 또한 문화적, 정치적, 경제적 측면에서 동아시아에 큰 변화를 가져왔을 것이다. 고구려 중심의 문화와 예술, 정치체제가 한반도 전체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며, 이는 한국사의 발전 방향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끌었을 것이다. 고구려가 통일한 한반도는 강력한 군사력과 문화적 자부심을 바탕으로 동아시아의 중심 국가로 자리 잡았을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상상을 통해 우리는 현재의 역사적 결과를 재평가하고, 그 의미를 새롭게 조명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백근시대의 삶(50대의 하루의 삶)'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비교해 보면? (9) | 2024.08.27 |
---|---|
시간이 멈추고 영원히 늙지 않는다면? (10) | 2024.08.26 |
선입견 없는 삶으로 가는 길은? (47) | 2024.08.24 |
당신은 무엇을 소중히 여기고 사는가? (47) | 2024.08.23 |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은? (28) | 2024.08.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