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 문신이자 학자였던 김득신이라는 인물이 있다. 얼마 전 우연히 알게 된 학자이다. 독서를 그렇게 많이 한 인물이 또 있을까? 왜 그는 그렇게 많이 읽었을까? 그는 재능이 없었다. 일화를 몇 개 보면 알 수 있다. 김득신은 책을 엄청 좋아했다고 한다. 사마천의 <사기> 중 『백이전(伯夷傳)』을 11만 3천 번을 읽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기억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어떤 사람집을 말을 타고 지나가는데 책 읽는 소리가 들려 말을 멈추고 들었다. 그리고는 "그 글이 아주 익숙한데, 무슨 글인지 생각이 안 나는구나"라고 하자, 하인이 올려보며 "부학자 재적극박(夫學者 載籍極博) 어쩌고 저쩌고는 나리가 매일 읽던 것을 쇤네도 알겠는데 나리가 모르신다는 말씀입니까?"라고 했다고 한다. 김득신은 그제야 자신이 읽었던 『백이전(伯夷傳)』임을 알았다고 한다. 하인도 지겹게 들어 외우던 것을 김득신을 몰랐던 것이다. 또 한식날 하인과 길을 가다 5 언시 한 구절을 들었다. 그 구절은 "마상봉한식(馬上逢寒食)이었다. 그가 한참을 대꾸하지 못하고 끙끙대자 하인이 대뜸 "도중 속모춘(途中屬暮春)"이라고 했다. 그러자 말에서 내려 "네 재주가 나보다 나으니, 이제부터 내가 네 말구종을 들겠다"라고 하자, 하인이 "나리가 날마다 외우시던 당시가 아닙니까?" 했다고 한다. 그제야 김득신이 "그렇지"했다는 것이다. 학자로 명성을 얻었던 김득신에게는 수치일지는 모르나,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깨우침을 주고 있다. 그가 책을 반복해서 읽은 이유는 무엇이며, 이를 통해 무엇을 얻고자 했는가?
반복이 가져다주는 깊이 있는 이해
김득신이 그렇게 책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은 것에 대해 책을 많이 읽은 것만을 바라봐서는 안된다. 백이전이 내용은 충절과 도덕, 절개를 지키는 백이의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김득신은 이 책을 읽을 때마다 같은 내용임에도 다른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나도 책을 읽다 보면 전혀 다른 부분에 눈길이 가는 경우들이 있다. 처음 읽을 때와 두 번째, 세 번째의 감동은 전혀 다르다. 내가 제일 많이 읽은 책이 삼국지이다. 처음 읽었을 때의 삼국지는 그저 중국의 재미있는 역사서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두 번째 읽을 때는 유비가 한나라의 정통을 잊는 인물로서 정당성에 기준이 있었고, 유비의 자비와 백성을 궁휼히 여기는 것에 초점이 있었다. 그리고 함께 눈에 들어온 인물, 제갈량이 있었다.
세 번째 읽을 때는 조조의 인물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 간신이고, 충절과는 거리가 먼 인물을 영웅의 반열에 올려놓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늘 이야기하지만 역사서는 승자의 기록이다. 그래서 승자에 대한 것이 부각이 된다. 위나라 조조는 승자인가? 그렇지 않았다. 조조가 영웅인 이유는 자신의 수하들에 대한 믿음이 있었고, 배신을 싫어했으며, 관우를 보내 줄 때는 눈물로써 보내주었다. 그것은 대단한 용기라고 할 수 있다. 관우 정도의 장수는 백만 대군을 적에게 보내주는 것임에도 그는 보내 주었다. 또 신의를 지키며 곽가가 죽었을 때는 자신의 자식이 죽은 것처럼 한탄하고 탄식하며 장사를 지내주었다. 그래서인지 나관중의 삼국지에서 제갈량이 부각되었지만 조조의 군사 중에도 제갈량과 견줄만한 군사들이 꽤 있었던 것을 보았다.
이처럼 반복적으로 독서를 한다는 것은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보게 된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지식이 축적이 되고, 이해의 깊이는 더해지게 된다. 김득신은 이러한 반복의 힘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통해 누구보다 깊이 있는 학문적 성취를 이루었다고 본다. 현대인은 다양한 정보를 접하고 빠르게 소비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기에 김득신처럼 반복적인 독서가 필요해 보인다. 그는 끊임없는 노력을 하고 그 안에 담긴 지혜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인물이다. 그가 이루어낸 학문적 성취는 우리에게 교훈을 주고 있다. 새로운 지식을 쫒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의 주제에 깊이 있게 반복적으로 연구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김득신의 삶도 아마 느림의 미학이었을 것 같다. 그는 스스로 학습에 있어 느리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것이 어쩌면 그의 단점이었을 수도 있지만 자신의 느린 속도를 극복하기 위해 꾸준함과 반복을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김득신은 학습이 더딘 사람들에게 꾸준함과 인내가 얼마나 소중하고 강력한 무기 인지를 보여주었다. 현대인들은 빠르게 무엇인가의 결과를 얻기를 바라고, 특히 한국인들은 빨리빨리 가 몸에 배어져 있다. 그래서 어떤 일을 하면서, 책을 읽으면서 서두르는 경향이 있다. 책의 내용을 파악하기보다는 그 책을 읽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보다. 진정한 성취는 빠름이 아니라 느림의 미학에서 온다. 느리지만 꾸준히 나아가고, 더 깊이 있게 의미를 탐구해야 성과를 만들어 낸다. 김득신은 백이전 독서 경험에서 보듯 자신이 잘하지 못하는 것에 좌절하지 않았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찾은 방법이 반복이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매우 비효율적인 방법으로 학습에 매진했다. 이것이 결국 가장 효율적인 성과를 낳았음을 스스로 입증하였다. 성공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김득신처럼 느림이 미학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반복해서 책을 읽은 이유는 자신의 부족한 것을 매우기 위해서였고,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깊이 있는 의미를 탐구하고자 했던 것이라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다.
김득신의 삶은 느림의 미학과 반복의 힘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그는 재능이 부족했지만, 끊임없는 반복을 통해 깊이 있는 학문적 성취를 이루어냈다. 현대인은 빠르게 정보를 소비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김득신의 사례는 하나의 주제를 깊이 있게 반복적으로 연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했다. 반복적인 독서는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의미와 지혜를 발견하게 해주는 것이다. 그의 학습 방법은 겉으로는 비효율적으로 보였지만, 결국 가장 효율적인 성과를 낳은 것이다. 김득신은 자신의 느린 속도를 극복하기 위해 꾸준함과 인내를 선택했다. 이는 우리가 빠른 성과를 추구하기보다는 깊이 있는 이해와 꾸준한 노력을 통해 진정한 성취를 이룰 수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의 삶은 현대인들에게 느림의 미학과 반복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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