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수많은 선택을 하게 된다. 매일 크고 작은 선택들을 하면서 말이다. 이런 선택들은 자신뿐 아니라 타인에게도 영향을 준다. 공동체를 떠나시는 형님의 편지를 공동체에 전달할지 말지를 고민하면서 며칠을 보냈다. 이런 선택이 옳은 것인지?를 생각하면서 말이다. 이 선택이 나를 위한 것인지? 타인을 위한 선택인지를 생각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내가 조금 더 편해지기 위한 것은 아니었는지를 생각했다. 마음이 흔들렸고, 편지를 전달해 주기를 바랐던 형님의 마음과 이 내용으로 다른 이들도 생각해 보길 바라는 마음으로 선택을 했다. 마음은 아픔이었고, 답답했지만 관계라는 울타리 안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선택을 했다. 그러면서 생각을 해본다. 선택이 자신의 이득이어도 타인을 힘들게 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선택이라는 순간에 많은 이들은 흔들린다. 눈앞의 이득이 너무나 커 보이고, 타인의 고통은 멀리 있는 것으로 치부한다. 그럼 그 선택은 옳은 것일까? 다른 이들이 자신의 이득으로 눈물을 흘리게 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고, 그것이 자신이 원하는 삶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어떤 이득도 타인의 불행을 기반으로 만들어져서는 안 된다. 그 가치는 쉽고 빠르게 사라지기 때문이다.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덕과 배려는 바로 이곳에서 시작이 된다.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은 인간의 선택의 기로에서 도덕적 책임과 이득의 유혹 사이에서 어떻게 행동하는 지를 묘사하고 있다. 주인공 장발장에게 닥친 이익과 타인의 고통 사이에서 결국 타인의 행복을 위해 희생한다. 눈앞의 이득이 매력적이어도 타인의 눈물을 대가로 한다면 진정한 가치가 없게 된다. "당신의 선택은 누군가의 눈물을 닦아 주는가, 아니면 더 많은 눈물을 만들어 내는가?"
타인의 눈에 눈물이 고이지 않아야 한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이익이 최우선이다. 더 나은 삶, 기회를 얻기 위해 생기는 욕구로 어쩌면 자연스러운 본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본능이 인간을 진화하게 했고, 지금의 현대 사회를 만들어 가고 있다. 하지만 이런 본능만 우선하게 되고, 지나치게 강조하게 되면 타인의 고통을 무시하는 선택을 하게 된다. 이런 현상이 생기는 것이 무한 경쟁시대에 자신이 이루지 못하면 도태하게 되고, 자신은 세상에서 밀려난다는 강박이 이렇게 만든다고 본다. 회사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 동료를 희생시키는 경우들을 본다. 자신이 성공할 수 있지만, 이 과정에서 타인은 좌절하고 불행해진다면 그 성공이 의미가 있을까? 이득을 쫓는 본능이 타인을 짓밟는 것이라면 자신도 불행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순정에 반하다"라는 드라마를 우연히 보았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 가장 소중한 친구를 죽이고, 친구를 불행하게 하는 내용이었다. 결국 이렇게 한 사람은 자신도 불행하게 만들고 말았다. 이것은 인간이 근본적으로 타인과 연결된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타인의 불행을 선택하지 않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드라만에서 친구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자신이 구속되거나 불이익을 당할 것이 두려워서였다. 자신의 손해를 감수하고, 큰 유혹을 물리쳤다면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조직 사회에서는 이런 경우들이 많이 있다. 부실한 기업을 다른 조직에 소개해 주고 생색을 내는 인간들이 있다. 그리고는 그것을 지켜보고 자신은 좋은 기업들만 상대하면서 무너지는 조직에 비난을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나 역시 똑같은 행동을 하지는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나는 그렇지 않았다. 어느 날 소개를 받아 찾아온 고객이 있었다. 처음에는 대출을 많이 요청하여 우리만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다른 곳과 함께 하기로 하고 추진했다. 그런데 이 고객이 돈이 생겼다며 대출을 많이 받지 않는다고 한다. 많은 이들은 이제 혼자 할 수 있는 범위내이니 자신이 하고자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처음부터 함께 하기로 한 조직과 반을 나누어 대출을 실행해 주었다. 이것이 타인의 불행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이지만 자신의 이득만을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어떤 선택을 통해 타인의 눈물을 흘리게 해서는 안된다. 만일 자신이 얻는 이득이 타인의 눈물과 고통을 동반하게 되면, 종국에는 무너질 수밖에 없는 모래성을 쌓는 것이 된다. 타인의 불행을 기반으로 한 성공은 오래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 성공에는 내면에 있는 양심과 끊임없이 충돌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성공을 위해 타인을 속이고 그 기반 위에 우뚝 선 사람들이 승리자처럼 보인다. 또 그들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언젠가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는 경우들을 많이 본다. 내면에서 이는 지속적인 불안과 죄책감에 시달림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악인들은 그런 죄책감이나 시달림은 없다고 보는 것이 좋다. 그들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불행하게 보이는 부실기업임에도 타인을 도왔다고 자랑하고 다닌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다. 자신이 이득을 보지 않고 타인에게 제공했지만 그 마저도 안 좋은 결과로 이어지면 마음으로 아파하고 죄책감에 시달린다. 따라서 타인의 행복과 불행을 고려한 선택을 하고 선의를 베푸는 것을 넘어, 자신을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선택이 필요하다. 타인이 눈에서 눈물이 나지 않는 선택이 진정한 의미를 가지게 되고, 이득 이상의 가치를 만들어 내기에 충분하게 된다.
인생에서 사람들은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선다. 때로는 눈앞의 이득이 너무나 달콤하게 보이기도 하고, 타인이 고통은 없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타인의 눈에서 눈물이 나게 한다면 결코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선택이 되지 못한다. 이득보다 중요한 것이 인간적으로 지켜야 할 도덕과 배려이다. 타인의 불행을 외면하지 않고, 그들의 눈물 앞에서 멈출 수 있다면 단순한 성공 이상의 가치를 얻을 수 있다. 그것이 존중받는 삶, 떳떳한 삶, 진정으로 의미 있는 삶이 된다. 내 눈에 피 눈물을 흘리게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결코 마지막이 좋지 못했다. 이것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부분이다. 타인의 눈에서 피눈물이 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미 흘린 눈물은 이미 흘러내렸기 때문이다. 지금 당신이 선택의 순간이 있다면 스스로에게 물어보길 바란다. "이 선택이 타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당신을 더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선택을 하게 할 것이다.
지금은 백근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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