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일도 없던 하루에 이름을 붙인다면

  조용히, 아무런 일도 없이 지나간 하루가 있다. 기억을 더듬어도 특별한 장면이 떠오르지 않는 날이 있다. 눈을 뜨고, 커피를 마시고,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퇴근한 하루이다. 말 그대로 무탈하고 평범한 하루였다. 바쁘게 움직인 듯했지만, 감정도 감흥도 없이 조용히 흘러간 하루였다. 어제일 수도 있고, 무심히 지나친 어느 하루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날들은 시간이 지나면 자꾸 떠오르곤 한다. 아무 일도 없었던 하루에, 마음이 오래 머물러 있었던 것 같다.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이야기가 되려면, 무언가 특별한 사건이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눈에 띄는 성과, 뜻밖의 만남, 감정을 흔드는 일들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현실의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삶은 큰 움직임 없이 흘러가는 날들의 연속이다. 그저 스쳐 지나간다고 생각했던 하루에도 나름의 결이 있다. 그 안에는 익숙한 리듬과 삶의 규칙이 있다. 며칠 전, 그런 하루를 보낸 적이 있다. 그저 아파트 주차장을 서성인 날이었다. 날씨는 제법 쌀쌀했지만, 그냥 걷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저 몸을 움직이고 싶었던 날이었다. 휴대폰으로 유튜브를 켜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술에 취해 큰소리로 통화하던 남자, 아이와 손을 잡고 나란히 걷던 엄마와 아이, 웃음꽃을 피우며 장난치던 청소년들. 각자의 마음을 품은 사람들이 같은 공간을 걷고 있었다. 그 속에 나도 조용히 섞여 있었다.

 

  그날은 누가 내 이름을 부른 것도 아니었다. 어디에서도 내가 꼭 필요한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더 깊이 유튜브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 시간, 나는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존재였다.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었다. 그런 하루에, 문득 이름을 붙이고 싶어졌다. ‘말없이 나를 위로한 저녁’이라는 이름이었다. 겉보기엔 아무 일도 없었던 하루였다. 하지만 내면에서는 조용히 감정이 지나가고 있었다. 말로 표현하지 않았을 뿐, 마음은 분명 움직이고 있었다.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감정을 표현하고 있었다. 그날 보았던 풍경은 언젠가 문득 떠오르는 장면이 될 것이다. 그렇게 하나씩 마음속에 쌓이며,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든다. 하루에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그날을 마음에 새기는 행위이다. 기록되지 않았다면 잊혔을 감정이 되살아나는 순간이 된다. 특별한 사건이 없어도, 누군가와 나눈 말 한마디가 없어도, 내가 내 하루를 기억해 주는 일 자체가 중요하다. 그 행위만으로도 그날은 더 이상 ‘평범한 하루’가 아닌 것이다.

 

  그래서 오늘 나는 이렇게 적어본다.

 

“말은 없었지만, 마음은 조용히 움직인 하루였다.”

 

  그렇게 기록하는 순간, 오늘은 더 이상 스쳐 지나간 하루가 아닌 것이다. 말없이 흐른 하루에 내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하루는, 내 안에 조용히 살아 있는 것이다.

 

  당신의 하루에는 어떤 이름이 어울릴까? 아무 일도 없던 하루라고 느껴졌던 그날, 혹시 마음 어딘가에서 조용히 움직이던 감정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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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근시대

지금은 백근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