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무슨 일일까. 이번 여행은 내가 짠 일정표대로 흘러간 적이 거의 없다. 계획하지 않은 일이 계속 생기고, 그 일들이 또 다음 장면을 끌어온다. 처음엔 당황했는데, 이제는 조금 다른 감정이 올라온다. “아… 오늘도 또 뭔가 있겠구나.” 이른 아침, 나는 후에(Huế) 티엔 안 베네딕도 수도회를 향했다. vexere앱에서 리무진을 예약하고 픽업까지 해서 가는 것이었다. 아침에 숙소로 도착한 것은 리무진이 아니었다. 소형 자가용이다. 큰 차 7인승으로 알고 있던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중간에 들러서 태우고 가는 사람들이 있다. 예약을 한 것이 아니었나 보다. 어떤 경로에서인지 이들은 내릴 때 현금을 주고 내린다.

비좁은 차 안에서 2시간 30분을 달려 후에(Huế) 빈컴플라자 앞에 당도했다. 잠시 빈컴 플라자를 들여다 보고, 바로 베네딕도 수도회를 향해 그랩을 타고 갔다. 도착한 성지는 조용한 곳이었는데 성당 안에서 기도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곳을 향해 걸어 올라가 어떤 기도를 하는지는 모르지만 조용히 묵상을 하면서 함께 기도를 했다. 원래의 계획은 단순했다. 조용히 성지를 보고, 후에(Huế)에 있는 푸깜 주교좌 성당(Phu Cam Cathedral)을 들른 뒤, 후에(Huế) 성을 들여다 보고 다낭으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딱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역시나, 그 ‘딱 그 정도’가 오늘도 깨졌다.

“라방 가실래요?” 그 한마디가 오늘 하루를 바꿨다.
베네딕도 수도회에서 성지순례객들과 왜관 수도회 신부님을 만날 수 있었다. 그중에는 성지순례를 이끄는 여행사 사장님은 유튜브에서 보았던 분이기도 했다. "어 유튜브에서 뵈었습니다."하고 반갑게 인사를 했다. 어떻게 왔냐는 말에 자유일정으로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는 말을 남겼다. 이후 일정도 이야기를 하고 잠시 이곳을 들여다본다. 잠시 성물방을 거니는데 여행사 사장님이 내게 물었다. “여기서 나가서 푸깜 주교좌 성당(Phu Cam Cathedral)에 들러 라방 성모님 발현 성지에 갈 것인데, 가실래요?” 나는 거의 반사적으로 “와 그럼 좋죠”라고 답했다.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다. 원래 계획에는 없던 곳이고, 거리도 만만치 않은데, 내 입에서는 이미 ‘예’가 먼저 나왔다.

그렇게 나는 신부님께 허락을 구하고 전국에서 모집되어 마카오와 베트남을 함께 순례 중인 교우들과 합류하게 됐다. 푸깜 주교좌 성당(Phu Cam Cathedral)을 같이 방문했고, 점심 식사 후, 라방 성모님 발현 성지로 향했다. 움직이는 동안 내 머릿속에는 한 문장이 떠나지 않았다. “왜 이곳으로 불렀을까?” 어떤 연이 있어서, 나는 오늘 여기로 오게 된 걸까? 베트남 여행을 하면서 내 마음에 던져오는 질문들이었다. 이 질문은 답을 요구하는 질문이라기보다, 내 마음이 자꾸만 한쪽으로 기울어질 때 튀어나오는 습관 같아 보였다. 우연을 그냥 우연으로 넘기지 못하는 마음이 있고, 그 마음이 오늘도 나를 붙잡고 있었다.

내 계획이 아닌 길에서 배운 것: “준비해 놓는다는 것”을 믿는 연습
돌아오는 길에야 알게 됐다. 라방은 외진 곳이어서 그랩이 없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에 미리 그랩을 예약해 두었다. 미사가 거의 끝나가는 시점에 분주하게 움직여야, 후에(Huế)에서 다낭으로 오는 리무진을 타고 올 수 있는 일정이다. ‘혹시 몰라서’가 아니라 ‘반드시 그래야만’ 안심하는 내가 그렇게 준비해 둔 것들이었다. 그런데 미사가 늦어지면서 시간이 촉박해져 간다. 내 마음도 같이 조급해졌다. “이러다 놓치면 어떡하지?” “다낭까지 어떻게 돌아가지?” 그때 베트남 로컬 가이드가 말레이시아 팀을 이끄는 가이드를 소개해준다.

“다낭까지 갈 것인데 태워준데요.” 나는 급히 예약해 둔 이동을 모두 취소했다. 이런 이미 결제가 되었고, 취소 수수료가 전액이었다. 순간 한화로 50,000원이 사라져 버렸다. 하루에 50,000원이면 많은 것들을 하고도 남는 금액이다. 솔직히 그 순간엔 마음이 흔들렸다. ‘아까운데…’ ‘왜 이렇게 되지…’ 같은 생각도 함께 올라온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선택 덕분에 더 깊이 볼 시간이 생겼다. 내가 억지로 시간표에 맞추려 했다면, 그 순간들의 결을 놓쳤을지도 모른다. 계획을 지키려는 마음이 오히려 오늘의 선물을 밀어냈을지도 모른다.

문득, 내 모습이 보인다. 투정 부리는 아이처럼 “내 계획대로 안 되잖아”라고 속으로 떼쓰고 있는 나를 바라본다. 사실은 그저 상황에 감사하면 되는 건데, 나는 늘 내 계획을 붙잡고 안심하려 했던 거다. 우리는 계획을 세운다. 그런데 그 계획은 ‘내’ 계획이다. 내가 통제할 수 있다고 믿고 싶은 마음의 형태다. 반대로 말하면, 나는 아직 “준비해 놓는다는 것”을 온전히 믿지 못했던 거다. 내가 준비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내가 잡지 않으면 흔들릴 것 같고, 내가 계산하지 않으면 손해 보는 것 같아서 늘 계획이라는 것을 세운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계획을 놓친 대신, 길이 열렸다. 그리고 그 길 끝에는 사람도 있었다. 말레이시아 여행팀과 함께 다낭으로 돌아오는 여정은 긴 여정이었다. 잘생긴 가이드와 즐겁게 소통하는 말레이시아 누님들과 함께 한 여정이었다. 내가 영어를 조금만 더 할 수 있었어도 정말 재미있는 여행이 되었을 텐데라는 아쉬움도 함께 했다. 하지만 말레이시아 여행팀의 ‘누님들’이 가이드에게 요청을 한다. 한국에 여행 가면 연락을 하겠다고 왓츠앱 번호를 달라고. 나는 흔쾌히 허락하고 전화번호를 공유해 주었다. 여행이 참 그렇다. 장소보다 오래 남는 건 결국 사람이다. 돌아오는 길에 로컬에서 Nodle with seafood를 먹었는데 맛있게 먹었다. 라면에 해산물을 넣고, 간장으로 비벼 먹는 것이었다. 장장 5시간의 돌아오는 긴 여정을 마무리하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든다. 삶은 길 것 같지만 유한하다. 그래서 더더욱, 즐겁고 재미있는 선택이 중요하다. 내가 붙잡고 있던 ‘완벽한 계획’보다, 오늘 내게 찾아온 ‘뜻밖의 길’이 나를 더 살게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계획이 무너진 게 아니라, 내가 조금 더 믿게 됐다
오늘 하루는 내 계획이 무너진 날이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무너진 건 계획이 아니라 내 통제 욕구에 가까웠다. 계획대로 되지 않아서 불안했던 마음이, 누군가의 한마디 제안으로 바뀌고, 취소 수수료가 아까워 흔들리던 마음이, 결국 “이 시간이 더 깊어졌다”는 깨달음으로 바뀌었다. 오늘 후에(Huế)에서 라방(La vang)까지의 길은 내가 ‘잘 짠 일정’을 증명한 길이 아니라, 내가 ‘상황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한 길이었다. 그리고 그 연습은 꽤 소중했다. 다낭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조금 더 가벼워졌다. 계획이 무너지면 끝인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 틈으로 인연이 들어오고, 길이 열린다는 걸 오늘 배웠다.
백근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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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백근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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