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째 날은 다낭에서의 하루를 온전히 ‘쉼’으로 채우기로 했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찍고, 더 많이 채워야 할 것 같은 마음이 올라오는데, 이상하게도 이번 여행은 반대로 흐른다. 채우기보다 비우는 쪽으로, 멀리 가기보다 본질로 돌아오는 쪽으로 움직인다. 오전에는 다낭 대성당에서 한인 미사를 드렸다. 그리고 신부님의 강론 한 구절이 하루 종일 마음에서 잔잔한 파동처럼 번져 나간다.

“사랑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 사람 때문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비교의 기준 때문입니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능력이고, 우리 마음의 그릇 크기에 달려 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가 그동안 얼마나 자주 ‘비교의 기준’을 들고 살았는지 떠올랐다. 사람을 평가하고, 상황을 판단하고, 내 마음을 스스로 좁혀 놓던 기준들, 그리고 그 기준 때문에 사랑이 어렵다고 착각해 왔던 시간들이 스쳐 지나간다.

‘메인 요리’보다 ‘서브 요리’에 목숨을 거는 삶
성당에서 나오는 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메인 요리’보다 ‘서브 요리’에 더 많은 목숨을 걸고 있지 않은가? 일, 돈, 찰나의 감정들, 체면, 비교, 인정… 물론 필요하다. 하지만 정말 그게 삶에서 목숨을 걸 만큼 중요한 것들일까. 서브에 에너지를 쏟느라 정작 소중한 본질(Main)을 놓치고 있었던 건 아닌지, 다낭 한복판에서 갑자기 나를 돌아보게 된다. 여행이 좋은 건 가끔 이렇게, 익숙한 삶의 구조를 바깥에서 보게 해 준다는 점이다. 한 발 떨어져 보면 보이는 것들이 있다.

그날의 점심은 우연히 들어간 식당에서 시작됐다. 한시장의 복잡한 곳을 떠나 조금 떨어진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조금 걸어서 나오니 로컬의 분위기를 물씬 풍겨온다. 길을 가다 음식점에서 잡혔는데 마침 먹어보기로 한 '분짜'를 팔고 있다. 기대 이상이었다. 더 놀라운 건, 평소 낯설었던 고수조차 “나쁘지 않은데?”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입맛이 변한 걸까? 아니면 마음이 조금 너그러워진 걸까. 아마 둘 다일 것이다. 본질을 생각하고 나니, 사소한 것들이 덜 거슬렸다. 인생도 종종 이런 순서로 풀리는 것 같다. 마음이 넓어지면, 세상이 덜 뾰족해진다.

내가 먼저 웃으면, 관계는 생각보다 쉽게 열린다
가벼워진 마음이지만 무거운 몸(?)을 이끌고 마블마운틴(오행산)으로 향했다. 엘리베이터 가격이 15,000동으로 알고 있어 이것만 결제하면 되는 줄 알고 매표소 앞에 도착하니, 이런 40,000동을 추가로 결제해야 한다. 왜 결제해야 하는지는 올라가면서 알게 되었다. 산을 걸어야 하는 곳이 있어서였다. 정말 솔직히 말하면, 오르면서 몇 번이나 “내가 왜 이걸…”을 중얼거렸다. 하지만 올라가면 또 달라진다. 바람이 달라지고, 시야가 달라지고, 마음도 달라진다. 그곳에서 꼬마 아가씨를 열심히 아이폰 카메라로 담는 엄마를 만났다. 엄마는 예쁜 사진을 찍어주려고 지친 아이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하지만 내 눈에 아이는 이미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잠깐 망설였다. ‘괜히 오지랖인가?’ 그런데 그 꼬마 아가씨가 정말 예쁘다. 그래서 한 컷 찍었다. 그리고는 옆에 있는 가족 아가씨(이때까지만 해도 꼬마 아가씨 사족으로 착각)에게 보여 주었다. 그랬더니 "멋지다"는 말을 연신 내뱉는다. 그리고 혼자 여행 온 것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나누고, 나는 옆에 있는 아빠에게도 사진을 보여 주었다. 그랬더니 "Great!!"이라고 말한다. 서툰 영어로, “사진 찍어 드릴까요?” 흔쾌히 승낙을 하기에 엄마 아이폰으로 아이를 찍어 주었다. 그리고는 사진을 보고 "땡큐"라고 연신 고개를 숙인다. 맑은 모습의 엄마를 보니 그 짧은 웃음이 이상하게도 내 하루를 따뜻하게 만들었다.

하산하는 길에 아까 옆에 있던 아가씨들을 만났다. 그러자 언니는 먼저 웃으며 다가와 말했다. "어 아까 위에서 봤는데"라는 표정에서 느낄 수 있는 말을 한다. 다가가서 창피한 이야기이지만 "Gate, Get out?"라고 말을 붙였다. 나는 이곳이 내려가는 길이냐고 물어보는 의미였지만, 무례하게 들릴 수도 있고, 문쪽으로 나가라고 명령하는 말로 들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 아가씨는 "Let's go together?"라고 한다. 나는 이내 "That's good"라고 화답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이를 물어보니 22살이라고 하고, 옆에는 동생이라며 어리다고 한다. 그렇게 함께 내려오다, "사진 한 장 찍을까요?"라는 말에 환하게 웃으면서 사진을 찍는다. 참 밝고 명랑한 친구를 만나고 왔다.

대인관계라는 건 결국 ‘상대가 어떻게 하느냐’보다 내가 먼저 어떻게 다가가느냐에 더 크게 좌우된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말이 괜히 오래 살아남은 게 아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 마음은 비슷한가 보다. 내가 먼저 웃으면, 관계는 생각보다 쉽게 열린다. 내가 먼저 손 내밀면, 세상은 의외로 자주 손을 잡아준다. 오행산을 들러 미꽝을 먹으로 미케비치로 돌아왔다. 미꽝 소고기 쌀국수를 시켰는데 양이 적은 것 같아 하나를 더 시켰다. 종업원에게 "다낭 개구리 고기 쌀국수 맛있나요?"라고 연신 물어보니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웃기만 한다. 이렇게 웃은 이유를 음식을 먹은 후에 알았다. 개구리 고기는 처음 먹어 보았는데 정말 닭다리를 먹는 것 같았지만 전체적으로 입맛에 맞지 않았다.

이 날 하루를 마무리하며, 나는 두 가지 매듭을 조용히 묶어본다. 첫째, 메인 요리(본질)에 집중하자. 서브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쓰지 말고, 내 마음의 그릇을 좁히는 ‘비교의 기준’은 내려놓을 것이다. 둘째, 먼저 다가가자. 내가 먼저 웃자. 내가 먼저 건네는 작은 친절이, 생각지도 못한 인연과 기쁨을 만들어낸다. 다낭의 붉은 노을처럼, 내 삶도 본질을 향해 더 깊고 따뜻하게 익어가길 소망해 본다. 이 날은 그 연습을 꽤 잘 해낸 날이었다.
백근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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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백근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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