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낭에서의 마지막 날은 특별한 계획이 없었다.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마음이 더 분명했다. 여행에서 흔히 하는 욕심은 하나라도 더 보고, 더 찍고, 더 채우려는 마음들인데 그것을 내려놓고 그냥 쉬어보기로 했다. 아무 할 일 없이 쉬기로 한 날이, 오늘도 선물처럼 채워진다. 떠나는 날에 다시 만나기로 한 다낭에서 알게 된 친구가 오전을 함께해 줬다. 고작 두 번째 만남인데도, 오래 알고 지낸 사람처럼 말이 자연스럽게 흘렀다. 여행이 주는 마법은 아마 이런 데 있는지도 모르겠다. 만남의 시간이 짧아도 마음의 거리는 금방 가까워진다.

유명한 곳보다, 조용한 곳에서 더 깊게 남은 아침
그 친구의 안내로 한국인을 한 명도 마주치지 않은 한적한 시장을 걸었다. 조용한 시장의 풋내음이 코등을 자극한다. 그런 곳에서 캐슈너트를 구입 했는데, 시중가의 절반 가격이다. 대단한 사건은 아니지만, 이런 소소한 행운이 여행의 기분을 단번에 좋게 만든다. “마지막 날도 나쁘지 않네”라는 느낌이랄까. 우리는 줄 서서 기다리는 콩카페라는 곳을 지나쳐서 한국인이 드나들지 않는 한강변 작은 카페에 들어갔다. 음악 소리에 조용하지는 않았지마, 화려하지 않은 분위기와 무엇보다 대화를 오래 하기 좋았다. 사람들로 꽉 찬 유명한 장소에서는 마음이 바빠지는데, 작은 카페에서는 마음이 움직인다.

대화를 하고 점차 헤어져야 하는 시간이 다가온다. 함께 점심을 먹고 “다음에 또 보자”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이 말은 여행의 끝에서 더 묘하게 울린다. 작별 인사인데도, 헤어짐보다 연결의 감정을 느끼게 한다. 7월에 또 갈 일이 생겨버렸다. 그때 서로 연락해 보기로 한다. 그 약속을 뒤로하고 오후의 여유를 즐겼다. 마지막 날의 여유는 이상하게 달다. 더 챙기지 않아도 되는 마음, 더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마음이 되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의 가장 큰 수확은 ‘사람’이었다
돌아보면, 이번 자유여행에서 내가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장소’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자유여행을 온 젊은 부부, 고부간의 정겨운 여행을 하는 가족, 그리고 일곱 살 손주와 한 달 살기를 하러 오셨다는 일흔두 살 어르신까지… 다낭에서 만난 사람들은 내게 ‘여행의 형태는 참 다양하다’는 걸 보여줬다. 그리고 그 다양함이 이상하게도 나를 안심시켰다. “나는 내 방식대로 여행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느낌이 든다.

예전의 나는 낯선 이에게 말을 거는 게 어렵고 어색하게만 느껴졌는데 이번 여행에서는 먼저 인사를 건네고,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참 따뜻했다. 이게 여행 속의 공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조금 변한 걸까. 아마 둘 다일 거다. 낯선 곳에서는 사람의 마음이 조금 더 열리고, 그 열린 틈으로 “안녕하세요” 같은 말이 들어간다. 그리고 그 한마디가 대화를 만들고, 대화가 여행의 표정을 바꾼다.

짐을 찾아 공항에 도착했다. 여행이 끝났다는 사실보다, 내가 조금 달라졌다는 사실이 더 크게 느껴진다.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 가벼움은 들뜸이 아니라, 넉넉함에 가깝다. 그래서 생각한다. 돌아가서 다시 시작할 강의와 일상에도 이 넉넉함을 담아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하루를 선물하고 있다. 계획하지 않은 만남이 선물이 되고, 작은 시장의 행운이 하루를 따뜻하게 만들고, 두 번째 만남이 오래된 친구처럼 느껴졌던 이유는 결국 하나다. 여행은 ‘어디를 갔는지’보다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를 남기기 때문이다.
백근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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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백근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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