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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근시대의 삶(50대의 하루의 삶)

세상은 내가 하는 만큼, 보는 만큼 볼 수 있다.

by Coach Joseph 2024. 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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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은 우리에게 이야기한다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받은 만큼, 보는 만큼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세컨드라이프의 이야기를 읽었다. 과연 우리는 세상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내가 주어야만 세상이 내게 주는 것인가? 그것도 정확하지 않다. 내가 많은 것을 세상에 준다고 하지만 세상은 내게 그렇게 많은 것을 주고 있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세상은 나와 눈치게임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이 내게 주는 듯하면서 간을 보고, 그것이 짠지, 단지를 나보고 말하라고 한다. 아직 맛도 보지 못했는데도 말이다. 마음의 공간도 없는데도 내게 마음 공간을 내어 놓으라고 아우성을 친다. 세상은 왜 내게 이런 것을 요구만 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세상은 믿음이라고 하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내가 하는 만큼 세상은 내가 좀 변화해 볼게라고 답을 하고 있어서 이다. 용기를 가지고 세상을 헤쳐 나가 보면 세상은 그것을 보는 만큼 또 손을 내밀어 잡아 준다. 남들보다 가진 것도 없고, 잘난 것도 없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상황에 합당하게 세상은 내게 보여주고 있다. 살아내 보자는 뚝심을 가지는 것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떠올려 보면 좋겠다. 퇴직했던 조직의 직원들과 저녁에 한잔 하면서 그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정말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이 정말 원하는 것인지? 그걸 하면 어떤 것이 변화가 되는지?" 질문을 던졌다. 안락의자를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안락의자를 더욱 편안하게 만드는 것이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한 것이다. 지금 당장은 어렵고 힘들지 모르지만 자신이 할 수 있고 잘하는 것을 찾는다면 결국 조직에 도움이 되어서 이다.

세상에 어떤 것을 내가 주고 있는지를, 세상에 내가 요구할 것은 무엇인지를, 내가 세상을 향해 무엇을 할 것인지? 세상을 내가 얼마만큼 보고 있는지를 이 순간 생각해 보면 좋겠다.
세상은 내가 하는 만큼

 

  과속이 답이 아니다.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는 자동차가 있다. 이 자동차는 최대한 빨리 도착하기 위해 규정 속도를 위반하고 내 달린다. 그러다 어느 순간 다른 이유에 의해 사고를 당해게 되면 빨리 도착하려다 세상을 빨리 떠나게 된다. 나도 모르게 고속도로에 오르면 과속을 하는 경우들이 간혹 발생한다. 왠지 빨리 가야 할 것만 같은 느낌에 나도 모르게 액셀을 밟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고는 휴게소에서 여유를 부리며 쉼의 시간을 갖지만 결국 고속도로에 오르게 되면 밟아지는 본능은 어쩔 수 없게 된다. 인생도 그런 것 같다. 자신은 쉼의 시간을 갖고자 하지만 쉬지 못하고 의미 없이 액셀을 밟고 있음을 인지하게 된다. 잠시 그 쉼의 시간을 즐기는 것도 방법임에도 우리는 그러지 않는다. 어떻게든 빠르게 도착하기 위한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과속을 하게 되면 문제가 없을 수도 있지만 자신도 모르는 순간에 누군가에 의해 사고를 당하게 될 수도 있다. 그 사고 현장에서 자신이 과속을 하지 않았다면 하고 후회하는 순간에 이미 사고는 발생하고 만다. 구성원들을 보며 빠르게 성장하기를 기대하고 있지만 실은 그 빠름의 성장을 위해 무작정 달리면서 주변을 보지 못하고 만다. 이것이 조직을 어렵게 하기도 한다. 잠시 주변을 살피는 여유를 가지고 주인의식을 못 갖는다고 추궁하는 것이 아니고 주인 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서포트하는 노력도 필요함이다. 이런 사실을 많은 리더들이 알고 있지만 당장 눈앞의 이득이 자신이 가진 혜안을 더럽혀 버린다. 그리고는 다른 선택을 하는 순간을 맞이하고 만다. 

 

  우리는 세상에 존재해야만 하는 이유를 가지고 있음에도 그것을 볼 줄 모르는 사람처럼 행동하거나, 정말 그것을 보지 못하고 만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자신이 보여 줄 수 있는 진심이라는 것이다. 진심을 다한다는 것은 과속을 하며 그 순간을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정속주행을 하면서 자신이 가고 있는 길을 바라보게 한다. 자신이 원하는 모습이 무엇인지?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모습인지? 그 모습을 하늘 위에서 바라본다면? 3층, 5층 높이에서 본다면?이라고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면서 최대한 자신을 바라볼 용기를 가져야 한다. 술 한잔을 기울인다고 세상이 하는 것을 보지 못한다고 말할 수 없다. 그 세상을 우리는 매일 보고 있지만 그 세상을 바라볼 용기가 없는 것이다. 


 

  세상은 내가 하는 만큼을 알고 있고, 그 이상은 보여 주지 않음을 우리는 간과하고 있다. 그럼에도 자신이 많은 것을 하고 있는 듯 모든 것을 대변하고 말하려고 한다. 잠시 주변을 바라보자.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어떤 세상을 살고 있는지를 잠시 바라볼 여유를 갖는다면 어떤가? 바로 자신이 가진 모습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과속을 하면서 세상에 원망하기보다는 정속주행을 하면서 세상에 요구하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그것이 우리가 세상 속에 존재하는 것이고, 작은 희망을 만들어 가는 것이 된다. 잠시 눈을 감고 떠올려 보자. 세상에 어떤 것을 내가 주고 있는지를, 세상에 내가 요구할 것은 무엇인지를, 내가 세상을 향해 무엇을 할 것인지? 세상을 내가 얼마만큼 보고 있는지를 이 순간 생각해 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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