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이라는 것은 미래에 내가 이루고자 하는 것이나 원하는 것을 이루고자 하는 것을 말하는 글자이다. 아침에 출근하여 보니 상황이 녹녹치 않다. 지시했던 일들은 처리된 것은 없고, 불분명하게 진행된 일들은 진행되고 있는 것을 보면서 리더로서 역할을 제대로 못해왔구나를 생각해 본다. 좋은 것들을 적용하기 위해서 였고, 많은 부분들을 버리고 새롭게 멋진 조직을 만들어 가고자 하는 희망을 품고 이직하여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 희망은 왜 이리 험난한 것인가? 이토록 희망을 가진다는 것이 어려운 것인가? 조직을 살려 보기 위해 발버둥치면서 이리 저리 뛰어가고 있지만 삶은 그리 순탄치 않다.
희망은 도대체 무얼까?
희망은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특정한 결과를 기대하는 긍정적인 것과 상황이 개선되거나 나아 질 것이라고 믿는 감정들이다. 그것은 도전적인 상황을 견디어 내야 하고 문제에 대한 해결점으로 찾아야 하며, 더 멋진 미래를 만들것이라고 하는 강한 힘이 되어주기도 한다. 희망은 동기부여를 시켜주고, 장애물이 다가오면 극복하게 하며, 목적의식을 갖도록 만들어 준다. 불확실한 시기일수록 더더욱 구심점이 되어주며, 역경에서는 때론 위안을 제공하며, 자신의 가능성과 운명을 개척할 수 있는 힘을 제공한다.
또한 희망은 긍정적으로 살아가도록 하는 것으로 행복감이라는 감정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누구나 희망이 없다면 아마도 부정적 사고 속에서 견디지 못하고 모두 자포자기 하고 말 것이다. 미래를 상상한다는것은 상당히 매력적인 것이다. 기대감을 상승시키며, 열정을 불러와 목표를 향해 나아가게 만들어 주며, 편안함과 마음의 위안을 가져다 주어 안전하게 항구로 들어갈 수 있도록 때론 등대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희망은 삶의 목적이자 의미이다. 새로운 개선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것을 해결해 주어 삶을 더 나은 곳으로 확장해 갈 수 있도록 한다. 단순히 맹목적이고 낙관적으로만 생각하는 것이 희망이 아니다. 노력과 회복력의 과정들을 겪어가면서 만나는 장애물들을 인정하면서 마주하는 것이다. 삶의 복잡성 속에서 장애물을 인정하는 것이 희망이며, 그것을 이루기 위해 결단하고 진행하는 힘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렇지만 장애물을 만나서 인정하는 것이 힘들다. 20대~30대라면 아마도 덜 힘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나름의 힘듬은 인정한다. 삶의 반환점을 돈 50대는 장애물을 어떻게 넘어야 할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수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터널 속의 갈림길에서 운에 맡기고 방향을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동안은 먼 발치에서 보여지는 터널의 끝이 보이는 듯 빛을 보고 움직였다. "이 시간만 지나가면 이 터널을 나갈 수 있을 거야"라며 한발 한발을 내딛어 갔다. 그런데도 옮기는 한발 한발에 대한 희망의 불빛이 터널안을 휘감고 도는 바람에 심하게 흔들린다. 흔들리는 불빛에서 많은 고뇌와 번민이 쌓이고 있다. 나 자신보다 조직의 불빛이 더 많이 흔들린다. 떠나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어떻게든 조직이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을 만들어 주고는 떠나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다고 당장 떠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불확실한 미래를 담보로 경력전환을 할 수만은 또 없기 때문이다.
조직의 희망과 스스로의 희망은?
희망이 보인다면 무언가라도 당장해 나갈 수 있다. 점점 희미해져 가는 불빛에 언제쯤 나타날 지 모르는 빛을 그리면서 삶이 피폐해져 가고 있다. 무엇을 원하는가? 무엇이 되고 싶은가? 무엇을 하고자 하는 데 이처럼 망설이는가? 먼저 생각하는 것이 일단은 조직의 안녕이 필요하다. 물에 빠진 사람이 허우적 대면서 헛힘을 쓰는 것처럼 아무리 허우적 대고 있어도 빛의 손길을 잡을 수가 없다. 아니, 빛의 손길이 있는지 조차도 모른다. 두달전 나에게 “현재 조직에는 너가 신경쓰지 않아도 잘 돌아갈거니까 너무 걱정하지마”라며 이야기 해주던 영이 맑은 누님의 소리를 들을 때만 해도 조직의 안녕은 웬지 터널의 빛이 보이는 듯 했다. 하지만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졌던 희망이라는 마음은 두달이 지나가면서 다시 가라앉고 있다.
희망이라는 가치를 조직에 두면 잘 되어야 내가 인정받고 살아갈 수 있으며, 좀 더 오래 이곳에 남을 수 있는 것이다. 말은 이렇게 근사하게 하지만 결국 먹고 살 수 있다는 표현이지 않을까 한다. 하지만 개인에 둔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희망은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이다.이 여정은 녹녹치 않은 과정들이 기다리고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많은 노력들을 해나간다면 이 과정들은 오히려 기쁨이고 즐거움이 있는 행복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50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모두 조직에 희망을 두면서 살아간다. 이것만이 살길 처럼 생각하고 사는 사람들이 부지기 수일 것이다. 왜냐하면 딱히 나가서 할일이 없고, 찾아보아도 눈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며, 직장이라는 프레임에 정해진 수순대로 살아 왔기 때문이다. 또한 정년이라는 것은 터널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해 오기 떄문이다. 하지만 정년퇴직한 선배들을 보면 단순히 지금의 삶에 종사한 것을 후회하고 있다. 미리 준비해 둘 것을 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조직의 안녕을 위한, 지속성장가능하게 하기 위한 희망들이 조직의 번영을 가져오고 좀 더 보람찬 생활을 할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것들이 가족들에게 전달될 것으로만 생각했다. 그런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인지해 가는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가족은 항상 제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고 아이들도 항상 그자리에서 기다려 주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집에서 나와의 대화시간이 없었던 가족들을 생각해보니 하늘에 먹구름이 잔뜩 끼인 것을 볼 때처럼 우울한 마음이다. 아마도 이런 글들을 쓰지 않았다면 이런 모습을 볼 겨를도 없었을 것이고, 미소보다는 찡그린 어두운 얼굴로 보내고 있을 것이다.
나를 만나는 사람들은 항상 호인인 것처럼 생각을 한다. 정말 감사한 일로 인상을 좋게 만들어준 부모님에게 감사해야 겠다.딱히 틀린이야기는 아닌 것이 매사에 화합을 하기 위해 분위기를 따르고, 그렇게 되는 것이 아리스토 텔레스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라는 말과 합치 되기 때문이다. 쇼파처럼 편안해야 하는 것이 가족들 임에도 모든 것을 소진하고 퇴근 후에 집에와서 독불장군처럼 명령을 하달하는 군인의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자그마한 일에도 예민하게 대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면서 번아웃되는 상황을 맞이한다. 그나마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 조금은 가족들에게 덜 예민하게 행동하려고 한다.
희망을 이야기 하고자 한 것은 조직의 모습을 보면서 몇 해전 가졌던 희망이 떠올랐다. 희망차게 가능하다고 보았고, 그렇게 되어져 가는 것처럼 보여 자신감있게 진행했다. 한순간의 어려움들이 이렇게 힘들게 하여 폭주기관차의 동력이 다한 것은 아닌지? 그리고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희망에 점점 자신을 잃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희망을 빛이 아디에 있는지를 떠올려 본다.
*긍정의 한마디(완료형): 어려운 일들이 해결되어서 한결 가벼운 하루를 마무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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