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흩날리는 바람처럼 우리 곁은 스치고 지나간다. 스쳐가는 바람 속에서 무엇이 살아있고, 무엇이 죽어 있는지를 이해해 가는 것이 삶이다. 가을이 되고 떨어지는 낙엽은 나뭇가지에서 생명을 다하고 떨어진 것들이다. 이는 죽은 낙엽으로 살살 불어오는 가을바람에도 날아가 버린다. 한 여름 생명 가득한 나뭇가지에 붙어 있던 나뭇잎들, 태풍이 불고 강한 강풍 속에서도 살아왔던 잎들이 슬며시 불어오는 가을바람에 힘없이 흩날리고 있다. 하지만 살아 있는 것들은 아직도 강한 바람과 손을 잡고 그 길에 함께 하고 있다. 생명이라고 하는 것은 그렇게 강인하고, 끈질기게 매 순간을 살아간다.
살아 있는 나무 또한 강한 바람에 맞서며 더 깊게 뿌리를 단단히 고정하고 있다. 태풍이 와도 겨울이 되어 눈꽃으로 팔이 무거워도, 뿌리와 줄기가 서로 지탱하며 그 바람과 무게를 견디어 낸다. 삶이란 살아 있는 마음과 의지가 고난과 역경을 견디어 내고 지지 않기 위해 싸우는 것이다. 태풍과 싸우는 것이 아니고, 눈꽃의 무게를 견디는 것이 아니라 그저 태풍과 눈을 받아들이고 손을 잡고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어떤 바람이 불어와도 죽어 있는 낙엽들만 흩날릴 뿐이다. 살아 있는 것들은 바람을 통해 더욱 굳건하게 자리하고 있다.
생명력과 삶의 강인함
주변을 살펴보면 생명의 경이로움과 강인함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라틴어에 보면 Anima Mundi(아니마 문디)라는 말이 있다. 이는 생명의 힘을 우주적 차원에서 설명하고 있는데, 모든 존재는 상호 연결되고, 우주에는 통합된 의식이 존재하며, 자연의 질서화 조화는 이 우주적 생명력에 의해 유지된다는 것이다. 개인적인 어려움들은 단지 우주의 거대한 흐름의 한 부분에 속할 뿐이라고 한다. 생명을 가지고 있는 피조물은 이런 어려움을 통해 더욱 강해지고 적응력이 키워진다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이 어려움은 다른 생명체들과 협력해서 공동의 어려움을 극복한다는 것이다. 생명의 힘은 생각 이상으로 강하다. 아니마 문디처럼 거대한 생명의 그물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고, 서로에게 힘을 주고 있는 것이다. 글을 쓰고 있는 나를 바라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함께 글을 쓰고 있는 나의 페이스메이커 '세컨드라이프',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주는 코치, 동기들을 보면 마음은 한마음이다. 잘 되었으면 하고, 잘 만들어 가길 바라는 마음이다. 이것이 지금의 나를 성장시키고 유지시키는 생명의 힘이다.
거제도로 향해 오는 길에 나뭇가지를 앙상하게 만들어 버리고 바닥에 나뒹구는 낙엽을 바라본다. 나무의 일부였고, 여름날 푸르름으로 강한 생명력이 넘치던 그 잎이 가을이 되면서 붉게, 노랗게 익어가더니 어느새 한줄기의 바람에 쉽게 떨어져 나간다. 그저 바람의 방향에 따라서 움직이고, 흩날릴 뿐이다. 자신의 의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영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낙엽은 생명을 다한 이후에는 자신이 가졌던 모근 힘과 활력을 상실하고 연약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그렇기에 생명의 소중함이 더욱 깊이 있게 다가온다. 이런 낙엽들은 자연의 순환 속에서 다시 자신의 역할을 시작한다. 불교에는 윤회사상이 있다. 이는 인간이 죽어도 그 업(業)에 따라 육도(六道)의 세상에서 생사를 거듭한다는 것이다. 힌두교에도 비슷한 교리가 있다. 생명이 있는 것은 여섯 가지의 세상에 번갈아 태어나고 죽어 간다는 것으로 이를 육도윤회(六道輪廻)라고 한다. 낙엽은 분해되어 토양의 영양분으로 새로운 삶으로 전환되어 간다. 죽은 것들은 생명의 윤한성과 취약성을 극명하게 보여주지만 새로운 생명의 밑거름이 되며, 삶의 소중함을 더욱 강하게 일깨워 준다.
살아 있는 생명체들은 어떤가? 과연 이런 삶의 소중함을 깨닫고 있는가? 그저 거세게 불어 닥치는 태풍과 폭우, 쏟아지는 폭설에 힘들다고 투정만 하고 있지는 않은가? 아무리 거센 바람이 불어도 살아있는 나무는 쉽게 쓰러지지 않는다. 깊은 뿌리를 내리고, 견디어 낼 수 있는 힘이 있어서 이다. 나무의 나이테처럼 인간에게도 나이가 있다. 삶의 많은 경험만큼 더욱 단단하게, 굳건하게 견딘다는 것이다. 가끔 아스팔트의 틈바구니나, 산 높은 바위에 피어 있는 꽃이나 나무들을 본다. 자연의 생명력이 강하다는 것이다.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척박한 환경에서 밭을 일구어 농작물을 수확하는 농부처럼 힘은 내어야 한다. 희망과 긍정을 잃지 않는 태도와 자세를 가지고서 말이다. 인생은 자신이 가꾸어 가는 정원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꾸미어가고 만들어 가는지에 따라 그 정원의 아름다움이 만들어진다. 좋은 씨앗을 심고, 꾸준히 돌보는 것이 중요하다. 때로는 인내를 가지고 기다리기도 해야 한다.
ChatGPT를 받은 교육생이 자신이 근무하고 있는 곳에서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좋은 씨앗이 뿌려졌기에 그런 결과가 있는 것이다. 아쉽게도 그날 일정이 있어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내년도에 미리 일정을 조율해서 강의를 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감사하는 마음이다. 그저 낙엽처럼 흩날리며 세월을 보내왔다면 그런 기회는 없었을지 모른다. 나뭇가지를 짓누르는 눈덩이, 세차게 불어오는 강한 바람을 견디고 나무 자신의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물론 아직도 멀었기에 열심히 건강하고 좋은 씨앗들을 뿌려 나가야 한다. 인위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체화되고, 밖으로 나아가야 한다. 즉, 강의를 하면서 진심을 다하고 열과 성의를 다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이제 됐어"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좀 더 다가가지?"가는 교육생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
거제도를 내려오면서 아직은 예쁜 단풍잎들을 보면서 떠오른 생각들이었다. 삶은 때론 낙엽처럼 무의미하기도 하지만, 살아 있는 나무는 강한 바람과 함께 성장한다. 낙엽은 생명을 다해 자리를 떠나 나무의 영양분을 제공하고 다른 계절과 만나게 된다. 어렵고 힘든 시간이 있다고 해도 분명히 그것을 넘어서는 순간이 온다는 것을 말한다. 생명력은 매우 강하다. 어려움이 닥쳐도 그것을 극복하고 자연의 섭리를 따라가듯 삶도 순환 속에서 일어서게 된다. 떨어진 낙엽처럼 흩날리지 않으려면 더욱 굳건하게 뿌리를 땅에 박고, 태풍과 쌓인 눈을 이겨내야 한다. 하지만 혼자서는 힘들기에 협력자와 함께 하는 거이다. 삶은 정원과 같아서 어떻게 가꾸고 돌보는지에 때라 그 아름다움이 결정된다. 좋은 씨앗을 심고, 인내와 노력을 쌓아가면서 정원을 가꾸듯 인생을 돌본다면 그 진심을 통하게 된다고 본다. 진정한 강사로써, 코치로써 열과 성의를 다할 때 감동과 자신의 정원을 아름답게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처럼 살아야겠는가?
지금은 백근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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