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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머니코칭

나의 슬픈 돈 이야기 2

by Coach Joseph 2025. 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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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에 이어서....>

 

  믿음과 신뢰, 그리고 인생의 배움

  그런 후 들어간 곳이 지업사이다. 지업사는 아버지와 함께 독신계를 했던 막둥이 분이 하시는 사업장이었다. 어머니에게  "형수, 백근이 그렇게 하지 말고 제 밑에 와서 기술 배우라고 하세요. 장판 시공을 하면 월 200만 원을 넘게 벌 수 있어요. 기술을 마스터하면 제가 그렇게 벌 수 있게 해 줄게요."라고 했다는 것이다그 당시 공무원 월급이 40만 원 정도였고, 운전기사는 60만 원 ~ 70만 원 정도였다. 

 

  "너 이렇게 이야기하는 데 한 번 해봐라." 

  "그러게요 정말로 그렇게 해 준데요?"

  "그런데 만일 안 하면 내 성질 아니까 쉽지 않을 거다."

 

  그 말은 맞았다. 어머니는 그때만 해도 여장부셨다. 잘못된 일에 어머니가 말씀을 하면 토를 달지 못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한 번 해보죠. 열심히 배워볼게요."

 

  내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무얼 선택할 처지도 아니었다. 월급만 준다고 해도 되는데 기술만 마스트하면 월 200만 원을 벌게 해 주겠다니, 그것도 자기 집에서 하면서 그렇게 주겠다고 하니 더더욱 감사한 일이었다. 그런데 조건이 하나 있었다. 일을 배우는 수습 기간에는 월급이 적다는 것이었다. 수습기간이 3개월인지, 6개월인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수습이 끝나도 월급은 40만 원이라는 것이었다. 월급은 적었지만 미래가 있었다. 빠르게 기술을 익히면 지금 벌지 못한 것을 다만 회하고도 남는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그렇게 열심히 일을 했다. 1년 6개월쯤 되었을 무렵이다. 이제는 혼자서 지업사일을 운영할 정도가 되었다. 견적도 내고, 도배사도 붙이고, 도배도 하면서 실제로 도배를 한 적도 있었다. 장판은 기본이고, 장판 시공은 아주 어려운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내가 다했다. 어느새 나는 그 집의 그냥 일꾼이었다.

 

  어느 날 저녁 따로 저녁을 먹자고 하면서 이야기하길래 저는 돈을 더 벌 수 있을까요?" 그랬더니, "야 너는 내가 그냥 있을 것 같냐? 너랑 나랑은 삼촌 조카 사이 아니냐? 뭘 그렇게 따져 인마? 그게 뭐가 중요하냐?"라는 것이다. 허리가 아파서 주류 상사도 나왔었다. 그런 내가 아픈 허리를 이겨가며 기술을 익힌 이유가 있었는데 그런 내게 저렇게 이야기할 수 없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자리를 박차고 나오면서 "저 내일부터 안 나오겠습니다."하고 집으로 와 버렸다. 그동안 있었던 일들이 지나갔다. 나는 그 집의 일꾼이었다. 사장이 시키면 하고 하지 말라면 하지 않는 일꾼이었다. 돈을 벌기 위해 왔는데 사장 엄마가 어디를 간다고 하면, "야 일도 없으니까 우리 어머니 어디 모셔다 드리고 와라. 어머니 친구분들이랑 어디 가신다고 하니 모셔다 드리고 기다렸다 집에 모셔다 드려라." 그 집 아들, , 사모와 관련하여 모든 시중을 드는 것을 참고 견디어온 세월이 억울했다. 화가 나기도 했다. 돈이라는 것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사람을 비참하게 만드는지 몰랐다. 더군다나 아버지와 형제간처럼 지낸 분이 아버지가 없어서 그런지 라는 생각에 더욱 힘들었다. 집에 오는 내내 서러워서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다음 날 술이 깨었는지 전화가 어머니에게 왔나 보다.

 

  "형수, 미안합니다. 내가 다음 달부터 시공비를 포함해서 월급을 줄 테니 나오라고 설득 좀 해주세요."라는 것이었다.

  "아니요 안 가고 싶습니다."라고 말하고 사정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었다.

 

  그저 시공비를 더 쳐주지 않는 것만 말하고 말이다. 약속을 어겼다는 것만 강조했을 뿐이었다. 그랬더니 어머니가,

 

  "시공비를 더 쳐주면 처음 이야기한 것보다 앞으로 더 많아질 것입니다. 월급에 플러스로 붙어가니 훨씬 더 많아지지요."라고 했다는 것이다. 나는 이 말에 한 번 더 속고 말았다. 시공비가 얼마인지 나는 알고 있었고, 하루에 대략 어느 정도 돌아가니 그러면 더 나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한 번 더 인내하고 다음날부터 다시 출근을 시작했다. 내게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었다. 나도 양심이 있기에 본드사용료라든가 기본 들어오는 것에 대한 가격을 제외해도 최소 평당 2,000원 이상은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그래 좀만 힘내서 열심히 다니자 마음먹었다. 고급의 시공도 배워고 나도 좋지. 그렇게 한 달이 지났는데 시공비를 누락하고 월급을 준 것이다. 일이 별로 없었으니 다음 달에 한꺼번에 준다는 것이다. 다음 달에 입금된 것이 액수가 너무 적었다. 그래 그런가 보다고 생각하고 일을 했다. 최종적으로 그만둔 것이 아파트 2동과 전원주택 단지를 거의 두 달 안에 다 마무리했던 시기로 기억이 된다. 입금된 액수가 너무 적어서 기록을 했었다. 어디서 얼마를 시공했는지를 적었다

 

  아파트 시공을 했을 때 혼자서 1m 83cm에 30m짜리 장판을 어깨에 메고 가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1층에 내려놓고 각 방의 크기만큼 재단을 하고 각층과 방으로 옮기고 아파트 전체를 시공했다. 사장은 잠시 왔다가 갔고, 제단을 잠깐 도왔다. 그리고 나머지는 거의 혼자 했다. 전원주택단지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사장은 쏠라륨을 모노륨처럼 이야기를 했고, 가격차이가 평당 4,000원이 넘어간다. 일명 모노륨은 메이커, 쏠리륨은 비품이다. 그렇게 시공을 마무리했고, 월급을 받는데 너무 터무니가 없었다. 시공했던 인건비가 고작 십만 원이 조금 넘는다.(워낙 오래된 기억이라 가물거린다.) 이해할 수 없어서 물었다. 

 

  "야! 내가 가서 도왔잖아. 내 것은 차감해야지. 차량도 내 것을 사용했고, 거기에 본드값, 접착제, 재료값은 빼야지?"

  "제가 다 시공했잖아요. 삼촌은 저를 실어다 주고, 태우러 오고, 잠시 재단하다 갔고, 나머지 재단도 내가 했잖아요?"

  "넌 아무것도 없이 한 거잖아. 모든 재료는 내 것을 썼잖아."

 

  난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 이미 정해 놓은 것이었다. 참 비참했다. 아버지가 계시고, 내가 돈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재료의 원가를 따지면 평당 채 백원도 안 되는 것인데, 일은 내가 다했는데, 계산된 것은 500원 남짓이다. 그것도 전체가 아닌 많은 부분을 삭감을 받고서 말이다. 너무 억울했다.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아무리 그래도 저렇게 할 수는 없어. 생각을 하면 할수록 화가 났다. 자기는 비매품을 정품으로 해서 견적을 넣고 거기서도 남기는 금액이 있는데 어떻게 내게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만 다니기로 했다. 그랬더니 다시 어머니에게 또 미안하다며 미끼를 던졌고, 나를 한 번 만나자고 했다. 2년여를 함께 했던 정으로 만남을 가졌다. 그랬더니 내게 이상한 제안을 한다.

 

  "야! 내가 이 사업체 너 줄려고 했어. 앞으로 네가 맡아서 해라."

  "어떻게 하면 되나요?"

 

  참 많이 순진했다. 그 시커먼 속내를 보지 못했다.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던진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솔깃했나 보다. 

 

  "네가 다 인수해서 사업을 해라. 그리고 대신에 네가 매월 100만 원씩을 평생 나에게 줘. 사업장 물건도 있고, 전세금을 넣었다고 생각해. 대신에 미수 채권은 내가 받을 테니까? 업자들도 다 연결해서 해. 대신에 일을 하고 그것에 대한 00%를 내게 지불해야 해"

 

  어이가 없었다. 곰은 재주가 부리고 돈은 누가 가져간다고, 나는 평생을 자신의 노예로 살라는 종신 계약이나 다름없었다. 건물은 자신의 건물이었고, 재고는 내가 떠 않아야 했다. 그 이야기는 대리점에 내가 갚아야 할 채무가 생기는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나보고 나가라고 하면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나가야 하는 신세이기도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어린 나이지만 이것은 사업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내 노동력을 이용해 평생 편히 살다가 자신이 원하면 언제고 다시 회수해 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일들을 겪으며 돈이 없으면 사람들은 언제든지 이용하려고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결국 나는 그곳을 떠났다. 그리고 지나가면서 보니, 친 조카가 와서 나와 같은 일을 하는 것을 보았는데 참 안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경험을 하면서 나는 돈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아니, 중요하게 여길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한다. "세상에 돈이 전부가 아니야" 하지만 돈이 없을 때 사람들은 나를 이용하려 한다. 돈이 없을 때 선택권도 없었다. 돈이 없을 때 인간관계도 멀어졌다. 그런데도 나는 지금도 사람을 믿고 싶다. 여전히 사람을 믿으려고 한다. 그 이후에도 수없이 이용당하고 신뢰가 무너지고, 배신을 당했지만, 여전히 사람들과 함께 하려고 하고 믿는다.

 

  "돈이 있으면 이런 고민 없이 사람을 믿을 수 있을까?"

  "돈이 있으면 이용당하는 일이 사라질까?"

  "돈이 있으면 평범한 삶을 살면서도 사람을 경계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분명한 한 가지가 있다. 모든 사람이 그렇지 않다는 것이고, 분명히 좋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50대 중반을 넘기고 나니 그런 사람들이 생기나 보다. 나를 이용하기보다는 협업을 하려 하고, 도움을 주려하는 분들이 많이 있다. 그런 분들을 보면서 아직도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신뢰이고, 그렇게 퇴직 전까지 이용을 당했으면서도 지금도 나는 사람을 믿고 싶다고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나는 여행을 다니고, 가족들과 좋은 곳에 가고 싶다. 강의를 하면서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서 행복과 성장을 나누고 싶다. 하지만 현실은 아직이다. 그래서 지금 노력하고, 또 노력을 한다.

 

https://bit.ly/HappyGrowth

 

백근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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