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백근시대의 삶(50대의 하루의 삶)

붉은 대추 한알의 세상 소통 이야기

by Coach Joseph 2023. 7. 9.
728x90
반응형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이라는 시이다. 이 시를 보는 순간 오늘의 글감으로 선정하자 말자도 없이 이미 나의 손은 눈보다 빨랐다.
대추한알

대추 한 알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 안에 번개 몇 개가 들어서서
붉게 익히는 것일 게다
저게 혼자서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달이 들어서서
둥글게 만드는 것일 게다
대추야
너는 세상과 통하였구나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이라는 시이다. 어제 강점수업 MV과정을 듣고 저녁에 동기 친구가 올린 시이다. 이 시를 보는 순간 오늘의 글감으로 선정하자 말자도 없이 이미 나의 손은 눈보다 빨랐다. 바로 글자를 카피하고 이곳에 올려놓았다. 이유를 알 수는 없었다. 그리고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 그냥 마음에 와닿았다. 왜 마음에 닿았는지?라고 물어본다면 그냥.....이라고 하면서 드라마 대장금이 떠오른다. 대장금이라는 국민드라마(?)에서 죽순채를 먹고 양념에 무엇이 들었는지를 묻는 장면이 나온다. 어린 서장금(조정은 분)은 홍시라고 답한다. 이에 뭐라 했는지 물어보고 장금은 "설당이 아니고 홍시이옵니다."라는 답을 한다. 정상궁이  "어찌 홍시라 생각하느냐?"라고 물어본다. 여기서 그 유명한 대사가 나오는데 나의 마음과 같다. "저는.. 제입에는.. 고기를 씹을 때.. 홍시 맛이 났는데... 어찌 홍시라 생각했느냐 하시면.... 그냥 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 생각한 것이 온데..."라는 답변이었다. 지금의 나의 마음과 이리도 닮았단 말인가? 그냥 마음이 통했음을 알 수 있다. 읽는 순간에 모든 것이 내 마음을 관통해 간다.
 
  붉은 대추 한 알이 되어가는 중
  대추 한 알이라는 시의 시작이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 없다"이다 이 말 한마디에 모든 것이 담겨 있다. 대추가 붉어지기 위해 어떠한 시간들이 흘러갔을지에 대한 생각이 들게 하는 시이다. 천둥과 벼락, 태풍, 번개를 표현해 가며 순탄치 않은 우리들의 삶을 녹여내고 있는 듯했다. 그런 삶의 시간들이 흘러가면서 익어가는 것임을 시로 표현한 듯하다. 대추가 처음부터 붉게 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초록색의 열매를 맺고 시간이 흐르면서 천둥과 번개, 벼락, 태풍이라는 자연의 섭리에 따르면서 살아오다 보니, 스스로가 붉게 빛나고 달콤함이 가득한 열매로 변신하게 되는 것이다. 그만큼 인고의 시간을 지내야 하는 것이지 하루아침에 뚝딱하고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둥글어진 대추를 이야기하면서 "저게 혼자서 둥글어 질리 없다"라고 한다. 추운 겨울을 지나 작열하는 태양 속에서 그리고 빛이 없이 홀로 세워진 밤들을 지나 둥글게 된 것이다. 시간의 흐름이 있어야 하고, 그 기간 동안 열심히 버티고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마치 조약돌을 연상하게 하는 것이 산에서 흘러 내려 오는 이리저리 삐죽 빼죽 튀어나온 돌덩이가 계곡물을 따라 시냇물을 따라 험난한 강물을 지나 바닷가로 왔을 때 매끈한 조약돌이 된 것처럼 말이다. 그만큼의 시간들을 보내야 하고, 그 기간 동안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해주고 있는 것 같다.
 
  그렇게 세상과 통하고 있는 것이고 우리의 삶도 나이를 먹어가면서 세상과 소통하게 되는 것이다. 나의 삶도 결국은 세상과 소통을 하기 위한 지금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작가 너 새니얼 호손의 단편소설 '큰 바위 얼굴'을 보면 이 마을에 "언젠가 큰 바위 얼굴처럼 기품과 장엄함, 부드러움과 지혜를 갖춘 위대한 인물이 골짜기 마을에서 태어날 것"이라는 예언 속에서 그가 나타나기글 고대 했던 소년 '어니스트'가 청년이 되고 중년을 넘어 노년이 되어 결국 자신이 그 예언속 큰바위 얼굴이 된 것을 알게 된다. 삶 속에서 매일 큰 바위 얼굴을 스승으로 생각하며 살아온 어니스트는 겸손함과 지혜를 갖추고 마을 사람들의 존경을 받게 되었으며, 어니스트와 이야기를 나누고자 하는 사람들이 찾아오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큰 바위 얼굴은 사실 늘 우리들 곁에 함께 있었던 것이다.
 
  대추 한 알은 바로 우리 각각의 우리 자신의 모습이다. 어떤 것은 정말 먹음직스럽게 익기도 하고, 어떤 것은 벌레가 먹기도 하며, 어떤 것은 그런 시간을 같이 보냈음에도 아직도 붉은 대추가 되지 않기도 하며, 어떤 대추는 먼저 땅으로 떨어져 버리기도 한다. 세상과의 소통을 하는 각각의 대추들이 서로 다른 것들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나의 삶의 시간들이 지나고 나면 붉은 대추처럼, 그리고 그렇게 애타게 기다린 큰 바위 얼굴처럼 세상에 보여 질 것이다. 이 시간이 그래서 행복한 지도 모르겠다. 여러분은 어떤 대추가 되고 싶으신가요? 어떤 큰바위 얼굴을 만들어 가고 있으신가요?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