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둘째 날은 늦은 잠으로 조금은 피곤한 몸을 일으키며 시작했다. 하지만 여행의 설렘은 피곤함보다 조금 더 컸다. 숙소에서 아침 식사를 하러 내려갔는데 기대 이상이었다. 이 가격에 이런 조식이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음식의 종류와 맛 모두 만족스러웠다. 함께한 형 부부도 연신 감탄을 하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여행에서 숙소의 첫인상은 조식에서 결정된다는 말이 있는데, 이날만큼은 그 말이 딱 맞았다.

든든하게 아침을 먹은 뒤 미케비치로 향했다. 숙소에서 약 900m 정도 거리였지만 여행에서는 이상하게 거리가 짧게 느껴진다. 목적지가 있어서가 아니라 함께 걸어가는 사람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뜨거운 태양 아래를 걷다 보니 금세 셔츠가 땀으로 젖기 시작했다. 하지만 미케비치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젖은 셔츠를 천천히 말려 주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삶도 그렇지 않을까?“
살다 보면 비를 맞고 땀에 젖는 순간이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누군가의 위로와 따뜻한 바람이 다시 우리의 마음을 말려 준다. 견디는 시간이 지나면 다시 웃을 수 있는 순간이 찾아온다는 것을 바다가 조용히 알려주는 듯했다.




미케비치를 뒤로하고 이번에는 ‘바다의 별 성모님’을 찾아 걸었다. 약 2km 거리였지만 이번에도 걸음을 선택했다. 다낭에서는 유난히 많이 걷게 된다. 혼자라면 힘들었을 거리도 함께 걷는 사람들이 있어 즐거운 시간이 된다. 생각해 보면 인생도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함께 걸어가는 여정이다. 누군가를 기다려 주기도 하고, 때로는 내 걸음을 늦추기도 하며 서로의 속도를 맞춰 가는 것이 삶인지도 모르겠다. 무더운 햇살에 잠시 쉬어 가기로 했다. 커피와 망고주스로 더위를 식히며 잠깐의 휴식을 가졌다. 인생도 늘 직진만 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멈춰 쉬는 시간이 있어야 다시 힘 있게 걸어갈 수 있다. 쉼은 게으름이 아니라 다음 걸음을 위한 준비라는 사실을 여행은 다시 한번 일깨워 주었다. 드디어 바다의 별 성모님 앞에 도착했다.


현지에서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과거 큰 태풍이 이 지역을 휩쓸었을 때 주변 시설은 대부분 큰 피해를 입었지만, 양철과 철기둥으로 이루어진 이 성모상은 거의 그대로 남아 있었다고 한다. 사실 여부를 떠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특별한 은총의 장소로 기억하는 이유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조용히 성모님 앞에 앉아 기도를 드렸다. 혼자 왔던 1월 여행에서는 묵주기도 5단을 모두 바쳤지만 이번에는 더운 날씨와 일정을 고려해 1단만 천천히 봉헌하며 잠시 묵상의 시간을 가졌다. 옆 수도원을 둘러볼 수 있는지 물어봤지만 방문은 어렵다는 답을 들었다. 아쉬움은 있었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발걸음을 돌렸다.

오전 일정을 마친 뒤 산 마리노 부티크 호텔을 체크아웃하고 이번 여행의 새로운 숙소인 멜리아 빈펄 다낭 리버프론트로 이동했다. 합리적인 가격에 예약했지만 5성급 호텔다운 분위기와 서비스는 기대 이상이었다. 함께한 일행 모두 만족하는 모습을 보니 숙소를 선택한 사람으로서 괜히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짐을 풀고 곧바로 한시장으로 향했다. 본격적인 흥정이 시작됐다. 가격을 깎고, 다시 이야기하고, 다른 가게를 둘러보며 여행자만의 작은 전투가 이어졌다. 하지만 흥정을 하면서도 어린 상인들의 눈빛을 보면 마음이 약해진다.
‘조금 더 깎을 수도 있겠지만 이 정도면 서로 만족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여행자는 좋은 가격을 원하고, 상인은 하루의 장사를 원한다. 결국 서로가 웃을 수 있는 선에서 마무리하는 것이 가장 좋은 거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은 한국인 여행객들에게도 유명한 ‘My Hanh Nha Go Viet Da Nang’에서 먹었다. 가격은 조금 있는 편이었지만 음식은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오전 내내 걸으며 허기졌던 탓인지 모두가 맛있게 식사를 했다. 역시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즐거움은 음식이다.



이후 찾은 곳은 다낭의 대표적인 명소인 핑크성당이었다. 다시 찾아도 아름다운 곳이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 프랑스 신부 ‘발레’에 의해 건축된 성당이라고 한다. 분홍빛 외벽은 다낭의 푸른 하늘과 더욱 잘 어울렸고, 성당 안쪽 성모상 앞에서 잠시 묵상의 시간을 가졌다. 여행지에서도 잠시 마음을 내려놓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은 언제나 소중하다.






오후에는 일정을 비우고 수영장에서 보내자고 한다. 콩카페에서 시원한 스무디를 마시고 멜리아 호텔 수영장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수영장에서 우연히 만난 가족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며 다낭 여행에 대한 여러 정보를 얻었다. 일정을 마음대로 조정하고 우연한 만남들이 이어지는 것이 자유여행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녁에는 다시 한시장으로 향했다. 핑크성당 맞은편 골목에서 ‘Yuri’ 마사지숍을 홍보하던 ‘Phuong Tam’이라는 젊은 친구를 만났다. 밝은 미소와 친절한 설명으로 우리를 맞아 주었고,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다 결국 그곳에서 마사지를 받기로 했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마사지 실력도 좋았고, 직원들의 친절함도 인상적이었다. 시작 전에는 망고를, 마친 뒤에는 생망고주스까지 준비해 주는 세심한 서비스 덕분에 모두가 만족했다. 기념으로 함께 사진도 찍으며 좋은 추억 하나를 더 남겼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은 걷기로 했다. 한강을 닮은 듯한 다낭 한강 위로 시원한 바람이 끊임없이 불어왔다. 마치 하루 동안 쌓인 피로를 모두 가져가려는 듯했다. 강변 야시장은 하나둘 문을 닫고 있었고, 여행의 하루도 천천히 저물어 간다. 숙소로 들어가기 직전 형님이 웃으며 말했다.
“맥주 한잔하고 들어가요.”
그 한마디에 우리는 하루를 조금 더 붙잡기로 했다. 맥주 한 잔을 나누며 오늘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고 함께 웃었다. 여행은 관광지만 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하루를 함께 정리하는 이런 시간까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다시 느낀다. 오늘 하루를 돌아보며 아내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했다.
“당신 원래 이렇게 먼저 사람들에게 말을 잘 거는 사람이었나?”
수영장에서 만난 가족에게도, 마사지숍 앞에서 만난 Phuong Tam에게도 자연스럽게 다가가는 내 모습이 조금은 낯설게 보였던 모양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여행이 나를 바꾼 것이 아니라, 여행이 내 안에 있던 모습을 조금 더 꺼내 준 것인지도 모르겠다. 세상에 먼저 다가가면 세상도 조금씩 내게 다가온다. 오늘 다낭이 내게 알려준 가장 큰 선물은 아름다운 풍경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피어나는 따뜻한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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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근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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