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는 갈라지고, 몸은 많이 피곤한 모양이다. 이 밤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친다. 나이가 들수록 정말 말을 줄이는 길이 성숙의 길일까? 공자가 말한 육십의 이순(耳順)을 떠올리면서 나이가 들면 귀가 순해지고, 입은 닫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상도 비슷한 모양이다. 어른이 되면 말이 적고, 침묵할 줄 알아야 품위가 있다고 하니 말이다. 그 말이 틀렸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강단에서 강의를 하는 내게는 조금 다른 진실도 있어서이다. 말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살아가는 이유이고, 누군가에게 기여하는 통로이다. 그래서 목이 잠겨도, 몸이 무거워도, 지쳐있는 순간에도 말을 이어간다.

나이가 들수록 말을 줄여야 할까?
50을 넘어 60을 바라보고 가는 지금 말을 줄여야 성숙하다고 유튜브 영상들이 이야기를 한다. 그런 영상을 보니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혼자 있을 때는 조용한데, 사람만 만나면 이야기가 많아지는 모습을 보며 내가 미성숙 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요 며칠 피로가 누적이 되었는지 목소리가 잠기고 있다. 말을 할수록 목이 잠겨온다. 내일 코칭을 진행해야 하는데 걱정이 되기도 하다. 그들을 만나면서 나를 자랑하는 말이 아니라, 스스로를 바라볼 수 있는 말을 이어가야 한다.
작은 변화를 감지기고, 스스로 해볼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는 미묘한 변화들 말이다. 그런 장면들을 만나게 되면 호기심이 올라오고 질문을 던진다. "방금 두 손을 감싸셨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간단하지만 사람의 목소리에서 전달되는 느낌은 천차만별일 것이다. 이 질문은 상대바의 마음을 여는 소중한 말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게는 조금 다른 이유로 다가온다. 50이 넘어 60이 넘어도 말을 이어가야 한다.
말이 많은 것이 미성숙의 증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말의 많고 적음을 떠나 그 말이 향하고 있는 방향이 어디인가가 문제이다. 필요한 말이 사라지고 나면 관계의 균열이 생긴다. 그리고 말하지 않은 진심이 오히려 오해와 거리감을 불러온다. 에너지가 소진이 되어도 기꺼이 소통의 다리를 놓아야 하는 것은 말이기도 하다. 침묵도 소통의 한 줄기이지만, 침묵만으로 전달되지 않는 경우들이 있다는 것이다.
사람을 살리는 말
말은 양이 아니라, 말의 질이고, 책임이고, 방향이다. 성숙한 삶에서 무조건 입을 다무는 것은 책임을 회피하는 경우들이 많다. 자신이 내뱉은 말이 상대의 삶에 흔적을 남겨야 한다. 지루한 훈계가 아니라, 딱딱한 설명이 아니라 살아있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 닿는 언어를 선택하고 구사하는 것이다. 그것이 말로 사람을 살리는 길이라고 본다. 며칠간의 강행군 속에서도 멈추지 않았다. 누군가의 꿈을 찾는 열쇠가 바로 나의 말에서 시작될 수 있어서이다.
성숙은 어떤 말을 하고, 그 말이 누군가에 삶에 흔적을 남기는지 책임질 수 있을 때 비로소 성숙은 깊어진다. 침묵이 필요한 순간도 있지만, 반드시 말해야 하는 자리도 있다. 사려 깊게 생각하고, 상대방을 고려해서 말을 하는 것이다. 나는 앞으로도 많은 말을 하고 살아야 한다. 다만 그 말이 나를 드러내는 소음이 되지 않게 노력할 뿐이다. 누군가의 가능성을 깨우는 종소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성숙은 침묵의 크기가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말을 고를 줄 아는데서 시작한다.
백근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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