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다 보면 수많은 상황 앞에 붙여지는 이름이 있다. 행운 혹은 불운이다.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이게 행운인지, 불운인지 잘 파악이 안 된다. 같은 사건을 두고 누군가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참 다행이다.' 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재수가 없다."라고 말한다. 결과를 가지고 가르는 것은 사건 자체보다, 그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떤 선택을 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2026년 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 채드 레이미가 맞닥뜨린 장면이 바로 그랬다. 17번 홀에서 그의 공의 그린 뒤쪽 나무 턱에 위태롭게 걸렸다. 누군가는 물에 빠지지 않았으니 운이 좋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는 차라리 빠졌다면 드롭이 더 쉬운 상황이라며 불운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본질은 그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레이미는 그 자리를 탓하기보다 남은 가능성을 계산한 모양이다. 결국 샷을 하고 보기로 홀을 마무리했다. 그는 드롭존에서 치는 것보다 그 선택이 낫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행운과 불운이라는 이름이 아니라 그 상황 앞에서 어떤 선택을 했느냐가 중요하다.

위기는 관점에서 무너질 수 있다.
레이미의 공은 분명 위태로웠다. 잘못 치면 나무 턱을 맞고 물로 향할 수 있는 자리였다. 그럼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남은 가능성을 계산하고, 가장 덜 나쁜 길이라고 생각한 선택을 한 것이고, 위기를 선방으로 바꾸었다. 나는 그 장면을 바라보며 지금의 나의 모습을 본다. 강의를 이틀 앞두고, 이미 만들어 논 기존 강의안을 점검하고 있었다. 내게는 덜 익숙한 것들이다. 그래서인지 강의안을 구성하는 데만도 오래 걸렸다. 무난하게 강의를 진행할 것처럼 보였던 것이 점검을 하면서 부족함이 눈에 들어온다. 그것을 모른척하고 지나칠 수가 없다.
누군가는 그럴 것이다. "이틀밖에 안 남았는데 사서 고생하고 그래?"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늦은 것은 늦은 것이고, 지금이 이 상황을 불운이 아니라 행운으로 정의해보고 있다. 적어도 강의가 끝난 뒤가 아니라, 시작 전에 더 좋은 방향이 있다면 그걸 선택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이 순간에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에서의 명언이 떠오른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사옵니다."
이 말을 흔히 절망 속에서 핀 용기라고 알고 있다. 나 또한 다르지 않다. 하지만 나는 냉정한 전략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순신 장군은 없는 배를 세지 않았다. 남아 있는 12척을 본 것이다. 사라진 것을 한탄한들 그것이 생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남은 자원을 중심으로 어떻게 싸울 것인가에 집중한 것이다. 위기는 자원이 부족해서 오는 것은 아니다. 남은 자원을 바라보고, 어떻게 활용할지 선택할 때 위기가 선방이 되기도 한다.
남은 시간에 강의를 다시 설계하다.
남은 시간이 이제 겨우 30 시간 중에 내가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은 12시간 남짓일 것이다. 이 시간이 늦은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이 시간의 해석을 달리하려고 한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처럼 현실적으로 늦은 것은 아닌 것이다. 중요한 전환점이 되어 주는 것은 늦었음을 인정하는 것이고, 본질에 집중하려는 마음이다. 기존 강의안의 미진한 부분을 덜어내고, 새로운 것을 녹여내야 한다. 학습자들이 내용을 듣는 데서 그치지 않고, 직접 참여하고,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한다.
효율적인 준비가 속도에 있지 않다. 학습자의 입장에서 "왜 이것이 필요한가?"를 고민하는 것이고, 내게 물어보는 것이다. 채드 레이미가 공의 위치를 탓하지 않고, 클럽은 짧게 쥐었듯, 나 또한 남은 시간을 잘게 쪼개서 새로운 강의를 준비해야 한다. 요즘은 고되기도 하고, 바쁘기도 하다. 하지만 이것이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위기는 나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남은 자원으로 생각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위태로운 공을, 순간을, 상황을 탓하지 않고, 사라진 배를 세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부족한 시간을 탓하기보다 남은 시간에 집중해 보려고 한다. 늦었음을 인정하고 나니, 본질이 더 선명해지고 있다. 그래서 내일은 몰입의 시간을 보내야 하다. 행운으로 바꾸는 것은 바로 남은 것을 바라보는 태도라고 본다.
백근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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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백근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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