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타인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삶에 깊이 감동하면서도, 정작 현실에서는 그것을 쉽게 살아내지 못할까. 부모는 “너를 위해서”라고 말하고, 종교 지도자는 “희생과 사랑”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인간의 본능적인 이기심 앞에서 그 말들은 자주 힘을 잃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메시지보다 삶을 먼저 보게 된다. 삶의 증거를 따르라고 말하지만, 정작 그 말을 하는 이들조차 그렇게 살지 못하는 모습을 우리는 자주 마주한다. 그럴 때 삶의 증거는 누군가를 변화시키기보다, 오히려 더 깊은 냉소와 실망을 남기기도 한다.
성목요일 미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세족례의 장면이 불편하게 마음에 남았다. 스승이 제자의 발을 씻긴다는 것은 아름다운 겸손을 포장한 종교적 퍼포먼스가 아니다. 그것은 권위의 방향을 바꾸라는 사건이다. 높은 자리에 있는 이가 낮은 이를 잠시 섬기는 장면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 높은 자리에서 내려오라는 요청이다. 섬김이 부수적인 미덕이 아니라 리더십의 본질임을 드러내는, 매우 급진적인 행동인 것이다.

발을 씻기는 스승, 그리고 오늘날의 권위
세족례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지배하라는 것이 아니라 섬기라는 것이다. 종교 지도자라면 신자들 위에 군림하고 권위만을 내세우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이 보여주신 것처럼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그렇게 하여라”를 자신의 삶으로 실천해야 한다. 이것은 예절을 가르치기 위한 행동이 아니었다. 자신의 기득권을 내려놓으라는 강한 요청이었다. 그런데 이 요구는 이상하게도 너무 자주 신자들에게만 향한다. “여러분은 왜 내려놓지 못합니까?”라고 묻기 전에, 종교 지도자들 스스로가 먼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오늘날의 현실은 어떤가? 낮아짐을 설파하고 섬김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삶에서는 자신과 다른 의견을 쉽게 배척하고, 예수님의 시선이 아니라 지극히 인간적인 이해관계와 감정의 자리에서 판단하는 모습도 적지 않다. 때로는 그것을 불순종으로 규정하며 권위를 더욱 단단히 붙드는 장면도 보인다. 물론 모든 종교 지도자가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말과 삶 사이의 간극이 너무 커질 때, 사람들은 쉽게 상처받고 공동체로부터 멀어진다. 신앙의 이름으로 위로받아야 할 자리에서 오히려 실망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을 떼어 사람들의 생명이 되라고 가르치셨다면, 우리는 과연 무엇을 내어놓아야 할까?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내어주고 싶은가? 이 질문은 신자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먼저 종교 지도자들에게 더 무겁게 던져져야 하는 질문일지 모른다. 섬김보다 자신의 영향력을, 낮아짐보다 자신의 위치를 더 붙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한다. 공동체를 이끄는 이들이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불편한 질문을 외면할 때, 신앙은 점점 형식만 남게 된다. 그래서 어떤 순간에는 종교생활 자체가 불편한 마음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헤르만 헤세의 『동방 순례』에 등장하는 레오는 이 점을 잘 보여준다. 그는 겉으로는 하인의 모습으로 순례자들의 온갖 일을 도맡아 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실상 그는 공동체의 가장 중심에 서 있는 존재였다. 진짜 위대함은 높은 자리에 서서 명령하는 데 있지 않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 공동체를 떠받치는 힘, 바로 거기에서 나온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여전히 명령하는 자의 자리에서 “여러분은 낮은 자의 모습으로 자신을 내어주며 그리스도를 닮으십시오”라는 말을 듣게 될 때가 있다. 그 말이 틀린 것은 아닐지라도, 그 말을 하는 삶이 그것을 증명하지 못할 때 사람들은 더 깊이 지치게 된다.
결국 세족례는 단지 겸손한 행동의 본보기가 아니다. 그것은 권위가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리더십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묻는 질문이다. 신앙 공동체가 진정으로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말하려면, 희생과 사랑을 신자들에게만 요구할 것이 아니라 먼저 지도자들 자신의 삶으로 그 길을 증명해야 한다. 말과 삶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사람들은 메시지가 아니라 위선을 기억하게 된다. 참된 리더십은 위에서 가르치고 명령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가장 낮은 자리에서 자신을 내어주며 공동체를 떠받치는 데 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섬김을 말하는 권위가 아니라, 섬김으로 자신을 증명하는 삶의 증거이다.
백근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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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백근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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