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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근시대의 삶(50대의 하루의 삶)

말의 무게는 삶으로 증명된다.

by Coach Joseph 2026. 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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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높은 기준을 이야기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나는 늘 같은 질문을 던지게 된다. 당신은 지금, 자신이 말하는 가치에 책임을 지고 있는가? 그 가치가 타인에게는 무겁게 요구되고, 정작 자신에게는 한없이 느슨하게 적용된다면 사람들은 금세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그때부터 말은 힘을 잃는다.

  고등학교 시절, 성당에서 학생회장을 맡고 있을 때의 일이다. 학생들이 너무 시끄러워 한마디 했다.

  “얘들아, 조용히 좀 하자.”

  그러자 한 친구가 바로 받아쳤다.

  “너는 더 떠들고 있어.”

  요즘식으로 말하면, 내게 “너나 잘하세요”라고 한 셈이다. 그 말은 창피했지만 정확했다. 그리고 어쩌면 그 일이 내 삶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때 처음 알았다. 사람은 말보다 먼저 삶의 태도를 본다는 것을 말이다.

  내가 하지 않으면서 남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

  그 이후로 나는 내가 하는 말과 내 삶 사이의 거리를 자주 의식하게 되었다. 강의를 하면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하라고 말하면 마음이 몹시 무거워진다. 예를 들어 가족의 행복을 이야기하면서, 정작 내 가족 안에는 행복이 충분하지 않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말이 조심스러워진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런 강의를 하고 나면, 오히려 나는 가족의 행복을 위해 더 노력하게 된다. 이유는 단순하다. 내가 하지 않으면서 남에게만 요구하는 것은 내게 위선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자기 삶으로 감당하지 않는 가르침을 들을 때 유난히 힘들다. 그것이 강사의 말이든, 리더의 지시든, 종교 지도자의 설교든 마찬가지다.

 

  퇴직 전 조직에서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한 리더는 스스로는 자유롭게 행동하면서도, 나에게는 전혀 다른 기준을 적용했다. 어느 날은 그 행동이 물리적인 무례로까지 이어진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때 더 크게 남은 것은 몸의 통증이 아니었다. 나에게만 다른 잣대가 적용되었다는 사실이 더 아프고 화가 났다. 사람은 엄격한 기준 자체보다, 그 기준이 공정하지 않을 때 더 깊이 상처받는다. 리더십이 무너지는 순간도 바로 그 지점이다. 말로는 원칙을 강조하면서 삶으로는 특권을 누릴 때, 사람은 더 이상 그 말을 신뢰하지 않는다.

 

  성금요일에 다시 묻게 되는 질문

  성금요일 미사를 드리며 이런 생각이 더 깊어졌다. 예수님은 세상의 죄를 위해 목숨까지 내어놓으셨다. 죽음 앞에서 잠시 망설인 것이 아니라, 어떻게 끝까지 자신을 내어줄 것인가를 선택하셨다고 한다. 죽음을 단 한 번의 사건으로 택한 것이 아니라, 욕심에서, 편견에서, 식탁에서, 가정에서 매 순간 자신을 비워내는 길을 사신 것이다. 오늘의 독서가 귀에 울리고 있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는 대사제가 아니라, 모든 면에서 우리와 똑같은 유혹을 받으신, 그러나 죄는 짓지 않으신 대사제가 계십니다.” 히브리서 4장 15절

  이 말씀을 듣는 순간, 나는 종교 지도자들에게 완벽한 신성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그들도 인간이라는 것을 안다. 연약할 수 있고, 흔들릴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스스로 선택한 자리는 세상과는 다른 기준을 감당하겠다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 묻게 된다. 왜 낮아짐을 말하면서 권위를 놓지 못하는가? 왜 함께 가자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수평적 관계를 두려워하는가?  왜 시노드를 말하면서, 삶에서는 여전히 위계와 아집을 붙들고 있는가? 나는 그들이 성인이 되기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적어도 자신이 말하는 가치 앞에서 더 정직해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사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들이 결국은 내게 돌아오고 있다. 강사이자 코치인 나도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말하는 자리에 선다. 늘 강의하는 내내 제일 두려운 것은 "당신은 그렇게 하고 있나요?"라는 질문이다. 그래서 못하는 것은 솔직하게 못하고 있다고 이야기를 하고 나중에라도 그렇게 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다. 완벽할 수는 없다. 예수님처럼 온전히 자신을 내어줄 수 있는 사람도 거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말과 삶의 간극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겨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자각하는 태도이다. 자신이 세운 원칙을 다 지키지 못할 때 괴로워할 줄 알고, 그 때문에 부끄러워하며, 다시 삶을 조정하려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곳에서 진정성이 시작이 된다. 가르치는 대로 다 살지 못한다 해도, 그 불일치 앞에서 무너지고 다시 일어서려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높은 기준을 말한 만큼 자신의 삶에서 먼저 그것을 견뎌내려 애쓰는 사람, 그런 사람에게는 희망이 있다. 이 시간 그런 희망이 있는 사람으로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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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근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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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백근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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