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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근시대의 삶(50대의 하루의 삶)

멈춤은 포기가 아니라 나를 지키는 경계선이다.

by Coach Joseph 2026. 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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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제도에서 올라오는 길, 나는 길을 한 번 잘못 들었다. 단순한 실수였지만, 그 순간 이상하게도 그것이 내 마음의 상태를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처럼 느껴졌다. 이미 마음은 산란했고, 생각은 제자리를 잃고 있었으며, 한 통의 카톡 메시지가 내 안을 오래 흔들어 놓고 있었다. 심지어 가슴에 통증마저 느끼고 있었다.  처음에는 어떻게든 좋게 마무리하고 싶었다. 연락도 먼저 했고, 전화를 시도했고, 대화도 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침묵이었다. 지금 이 관계에서 내가 지키려 애쓰는 것이 정말 ‘유종의 미’인지, 아니면 나를 해치면서까지 놓지 못하는 형식인지를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나를 지키기 위해서, 그 지점에서 나는 멈추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든다.

  끝까지 버티는 것이 늘 미덕은 아니다

  우리는 종종 관계를 아름답게 마무리해야 한다는 말에 묶인다. 끝까지 책임지는 사람, 마지막까지 예의를 지키는 사람, 좋은 모양으로 정리하는 사람은 귀한 가치가 있다. 그러나 그것이 나의 일상을 무너뜨리고, 감정을 소모시키고, 결국 가장 소중한 사람들에게까지 어두운 기운을 번지게 만든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조직에 있으면서 한 번 경험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관계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나를 잃어버리는 것은 미덕이 아니다. 그것은 책임감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은 자기 자신을 방치하는 방식일 수도 있다.

 

  탈무드에 나오는 한 이야기를 카톡으로 전달받았다. 돈도 주지 않으면서 하인에게 술을 사오라고 시킨 구두쇠 주인이 있다. 그러자 하인이 돈을 달라고 요구하지만 주인은 돈 주고 술을 사오는 것은 누구나 한다. 돈 없이 술을 사오는 것이 비범한 것이다고 말이다. 얼마 후, 빈 술병을 가져온 하인에게 주인이 "빈 술병으로 어떻게 술을 마시냐?" 그러자 하인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술을 가지고 술을 마시는 것은 누구나 합니다. 빈 술병으로 술을 마셔야 비범한 것 아닙니까?”

 

  이 장면은 우습지만 날카롭다. 자신은 아무것도 내어주지 않으면서, 남에게만 비범한 책임감과 결과를 요구하는 사람들의 모순을 정확히 찌르기 때문이다.

 

  우리 삶에도 이런 관계가 있다. 존중은 주지 않으면서 책임만 요구하는 사람, 소통은 피하면서 이해를 바라 는 사람, 자신의 부족함은 사소하게 넘기면서 남의 작은 실수는 크게 부풀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만든 빈 술병은 언젠가는 그들 손으로 돌아가게 마련이다. 나 역시 처음에는 성찰했다. 혹시 내가 비판의 언어를 써왔기 때문에 비판을 받는 것일까? 이 질문은 중요하다. 그러나 성찰과 자학은 다르다. 상대의 잘못된 행동을 모두 내 탓으로 돌리고, 인내라는 이름으로 내 삶을 망가뜨리는 것은 성숙이 아니라 자기 소모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는 다른 방식으로 응답하려 한다. 설명도, 설득도, 감정적인 대응도 아닌 부재와 침묵이라는 빈 술병으로 하고자 한다.

 

  유종의 미보다 먼저 지켜야 할 것

  “중이 절이 싫으면 떠나면 된다”는 말은 때로 회피처럼 들린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그것이야말로 가장 건강한 선택이일 수 있다. 몇 달을 더 버티며 치료가 필요할 정도의 정신적 통증을 감수하는 것은 내 삶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진짜 유종의 미는 끝까지 버티는 형식을 지키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내가 나다운 모습으로 남을 수 있는 시점에 멈추는 데 있다. 만약 내가 이 관계를 억지로 끌고 가느라 집으로 돌아가 가족에게 짜증을 내고, 무기력해지고, 나답지 않은 사람이 되어간다면, 나는 정작 가장 소중한 사람들에게 비겁한 사람이 되고 만다.

 

  이번 일을 통해 나는 다시 배운우고 있다. 관계에도 경계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비난이 두려워 억지로 자리를 지키는 것이 오히려 더 큰 비겁함일 수 있다는 것이다. 나의 가치를 몰라주고, 사소한 허물을 붙잡아 전체를 부정하는 사람들에게 더 이상 내 시간을 내어주지 않기로 한다. 그들이 빈 술병으로 술을 마시려는 일을 계속하더라도, 그 몫은 그들에게 남겨두고 나는 다른 길로 가야 한다.

 

  그 길은 도망이 아니다. 오히려 나를 더 맑은 곳으로 데려가는 선택이다. 내가 다시 숨을 쉬고, 다시 글을 쓰고, 다시 강단에 서서 사람들에게 용기를 전할 수 있도록 만드는 선택이다. 멈춤은 끝이 아니다. 그것은 내 삶을 지키기 위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더 이상 허물어지지 않기 위해 세우는 단단한 선이다. 멈춤은 포기가 아니라, 나를 지키기 위해 세우는 가장 단단한 경계선이 되어 줄 것이다.

 

  https://백근시대.my.canva.site/

 

백근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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