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문득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성당에서의 좋은 추억이 있는 내가 부럽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도 언젠가 그런 기억을 가지면 좋겠다고 말이다. 매일 한 편의 영상이나 글을 보내주시는 신부님이 계신다. 오늘은 '고향의 봄'의 가사와 노래가 있는 것을 보내주셨다. 이것을 보면서 학창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 당시에는 평범한 일상이었던 것이지만, 함께 웃고, 어울리고, 위로받고, 누군가의 응원을 받으면서 보냈던 시간이다. 시간이 흘러 지금에 와서 보니, 지금의 나를 지탱하고 있는 힘이라는 생각도 든다.
자꾸만 뒤를 돌아보는 모습은 좋은 모습은 아니지만, 이런 추억을 떠올리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라고 본다. 인간은 앞만 바라보고 달려가는 야생마가 아니다. 자신이 지나온 발자국들을 꺼내보면서 그 속에서 의미를 생각해 가는 존재이다. 좋은 추억은 삶의 파도가 몰아칠 때 잠시 숨을 고르는 안식처가 되어 주기도 한다. 사진을 찍으면서 그런 기록들을 남기는 것도 그때의 좋은 추억들을 떠올리기 위하미이고, 그 기억이 삶의 회복탄력성을 높여주기를 기대해서 인지도 모른다.

좋은 추억은 힘이기도 하지만, 벽이 되기도 한다.
좋은 추억과 경험은 인간의 삶에 분명 좋은 영향을 주는 축복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것이 확신으로 굳어질 위험성도 함께 존재한다. 그 확신은 어느 순간 고집이 되고, 더 단단해져 가면 바로 아집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내가 살아보니, 내 경험상으로"라는 말이 쉬워지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때로는 그것을 관록이라고, 삶의 지혜라고 하지만 냉정하게 바라보면 새로운 변화를 거부하는 것일 수도 있다. 바로 자기 방어를 하는 것이다. 경험이 많으면 많을수록 타인의 말이 더 가볍게 들리기도 하고, 내 방식이 옳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면 점점 관계는 좁아지고, 스스로 만든 성벽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한 지인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었던 적이 있다. 늘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믿고,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이야기를 들어보지도 않고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자신의 짧은 경험은 더 많이 한 사람에게 절대적인 기준처럼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보면 불편함이 올라온다. 솔직히 말하면, 그 모습은 나의 조직 경험 35년을 무시하는 듯한 말로 불편함을 너머 불쾌하기까지 했다. 변한 세상의 조직을 경험해 보지 못했음에도 그것을 정당화하고 정답처럼 제시하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 불편함이 오늘 내게 다른 질문을 하고 있다. 내가 불쾌했던 이유가 단지 무례함 때문일까? 혹시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그런 모습으로 보이고는 있지 않을까? 내 경험의 두께가 타인의 신선한 시선과 가능성을 막아 세워버린 것은 아닌지 말이다. 그 순간 알게 된다. 타인의 아비에 유난히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바로 내 안에도 그런 비슷한 그림자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추억은 품고, 생각은 열어두자.
어떻게 하면 과거의 추억이 주는 힘은 지키면서, 아집의 덫에서는 벗어날 수 있을까? 아마도 태도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다. 내 경험도 유통기한이 지난 데이터 일 수 있기에 그것을 인정하는 태도가 있어야 한다. 분명 내 삶의 경력은 중요하고 소중한 자산이다. 하지만 그 시간이 오늘의 문제를 푸는 정답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시대고 변하고, 관계도 달라지고, 문제의 결도 달라졌는데, 자신만 과거의 틀에서 바라보게 되면 문제가 되고 상대방은 불쾌해질 수밖에 없다.
생각을 확장한다는 것을 알고, 내 생각을 버리는 준비가 필요하다. 내 생각 옆에 타인의 생각을 나란히 놓아 보는 일이 먼저 진행되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과거의 추억은 현재를 가두지 않게 된다. 그것은 현재를 더 폭넓게 열어주는 힘이 되어 준다. 여전히 소중한 추억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 기억들이 지금의 나를 살릴 수 있다는 것도 믿는다. 하지만 그 기억이 나를 따뜻하게 하는 대신 타인을 밀어내는 아집으로 굳어지지 않도록 주의가 필요하다. 추억은 나를 응원하는 안식처이어야지, 타인을 밀어내는 성벽을 쌓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다. 경험의 깊이가 진짜 지혜가 될 수 있도록 포용을 키우면서 말이다.
백근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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