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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도전 50일 1주 1편쓰기(6.19~8.07)

살면서 잘한 결정 3가지는 무엇인가요?

by Coach Joseph 2023. 7.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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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사진을 시작한 일과 리더십 코칭을 만난일, 그리고 아내를 만나 혼인한 일을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이 든다.
결정

  살면서 잘한 결정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된다.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어떤 것인지 조차도 모르게 정신없이 살아온 인생이다. 그런 삶을 살고 지금을 만나고 나니 "난 뭘 했지?"라며 약간 공허함이 나에게 다가온다. 가만히 책상에 앉아 살펴보니 있긴 한 것 같은데 3가지가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우연히 사진을 시작한 일과 리더십 코칭을 만난일, 그리고 아내를 만나 혼인한 일을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이 든다.

 

  우연히 사진을 시작한 결정

  포스팅했던 내용들이 있어 알 수도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사진이라고 하는 것이다. 사진은 정말 잘한 선택인 것이 지금도 봉사하면서 살아갈 수 있고, 주변사람들의 인정을 끊임없이 받는 것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사진을 처음 시작한 것은 정말 우연한 기회였고, 나에게 화남을 가르쳐준 S전자 서비스 센터 직원에게 어쩌면 감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 서비스 센터 직원의  "싸구려 가지고 장난치지 마세요"라며 나에게 던진 그 한마디는 아마도 죽는 순각까지도 잊지 못할 것이다. 요즘 말로 '개 화난'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싸구려라고 해도 그렇게 이야기하면 안 되는 것이었음에도 어쩜 그런 이야기를 쉽게 할 수 있었을까를 생각해 보면 지금의 나 조차도 이해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덕분에 DSLR 캐논 400D카메라와 18-55mm 번들렌즈를 착용하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400D로 초창기 찍었던 사진

 

  처음 사진을 이런저런 모습들을 찍고 수목원을 비롯하여 움직이는 곳마다 카메라는 나의 손에 들려 있었고, 아이들 사진을 찍어주면서 사진의 실력을 키워만 갔다. 그렇게 시작한 사진은 나의 삶에서 인정을 받는 것 중에 하나가 되었다. 성당에서 단체사진을 찍어주며 잘 찍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기분도 좋아진다. 또 사진후 보정을 통해 한쪽눈을 감은 사람을 눈을 뛰워주고 나이 드신 분들의 피부를 보정하여 젊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10여 년 전 아는 동생의 부탁으로 동생의 아버지 칠순 잔치를 촬영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리고 사진을 찍어 앨범으로 만들어 선물하였다. 그 후 시간이 흘러 2년 전 아버지가 작고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조문을 하고 자리에 앉아 나에게 묻는 것이 영정사진 기억하냐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내가 작업해 준 사진이었다. 이렇게도 사용이 되는구나를 알게 하는 순간이었다. 

 

  사진은 내가 결정한 것 중에 잘한 것 중에 하나임에 틀림없다. 누군가의 삶을 기록으로 남기게 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진을 하면서 다시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코칭에서 진행되는 것들이 사진과 닮아 있는 것들이 많아서 이다. 사진을 찍으면서 공간을 어떻게 가지고 가느냐에 따라 색감부터 느낌까지 정말 천양지차이다. 코칭도 그런 것이 공간을 어떻게 두드냐에 따라 고객의 안점감이 달라지게 되고 조급해하지 않으며 맘속 깊은 곳의 내면을 볼 수 있게 한다.

 

  리더십과 코칭을 배우고자 한 결정

  대학원을 여러 번 기회를 가지며 입학하려고 했었는데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진행한 과정이었다. 나이가 50이 넘어가면서 선택한다는 것이 쉬운 과정은 아니었다. 그것도 전주에서 서울로 다닌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기도 했다. 리더십과 코칭의 교육을 들으면서 조직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리더의 능력 즉, 리더십임을 다시 한번 인지하게 되고 사람이 문제임을 깨달으며 리더십을 배우고자 입학하게 되었다. 리더십을 배우면서 좋은 점들이 참 많았던 것이 내가 얼마나 실패한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었는지를 깨닫게 된 것이다. 무모하기도 하고 멍청하기도 하게 리더로서 역할을 했던 것이었다. 그것으로 인해 갈등의 씨앗이 되고 갈등은 결국 조직을 떠나게 만드는 것이었음을 알게 된 것이었다.

 

  리더십과 코칭을 공부하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다. 다른 쪽에 오히려 관심이 있기도 한 것이 마케팅이 참 재미있을 것으로 생각했었기에 더 관심이 있었다. 하지만 정말 선택을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리더십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코치로써 코칭 리더십을 접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코치면 코치지 코칭리더십은 무엇인가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사람의 내면에 가진 잠재력을 끌어 올라올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코칭이다. 리더는 무리를 이끄는 자리이고 성과를 창출할 수 있도록 결정을 해야 하는 자리이다. 그런데 아무리 뛰어난 리더라고 해도 준비가 되지 않고 훈련이 되지 않은 팀이나 조직을 이끌기만 한다고 되지 않는다. 팀원이나 구성원들이 역량을 발휘하도록 도와야 하는 데 여기에 필요한 것이 코칭이다. 팀원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본인이 그런 역량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바로 코치형 리더 역할인 것이다.

 

   이런 코치형 리더로 성장을 해나가고 있다. 구성원들에게 무조건적인 지시보다는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거나 그렇게 하기 위한 방법이 무엇인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끊임없이 묻는 것이다. 때로는 물론 멘토링이나 카운슬링처럼 될 수도 있지만 적절히 섞어 가면서 코칭을 접목하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책상이 지저분한 직원에게 이 책상이 깨끗하게 되어서 조직이 성장할 수 있다면 어떻게 하고 싶은지?를 통해 생각할 수 있고 행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질문하는 것은 코치로써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무언가 답을 가지고 유도 질문을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상 좀 치워"라고 강한 어조로 이야기한다면 어떨까? 권력이라고 하는 위계라고 하는 것에 못 이겨 치우긴 하겠지만 엄청 기분 나쁜 감정을 가지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고객을 응대하는 직원이 밖에까지 나가서 자세히 설명을 해주고, 답답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고객의 의견을 끝까지 경청해 주는 모습을 볼 때면 정말 마음이 흐뭇해진다. 이럴 때 "와!! 답답하게 계속 이야기하는 고객의 이야기를 끝까지 경청해주려고 하는 모습이 정말 멋지다."라며 Because화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 때문에"라고 명확하게 이야기함으로써 직원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이다. 이것이 공감하는 것이다. 과거의 나였으면 "잘했어"라고 한마디로 끝났을 것이다. 또 에어컨을 설치하면서 작업하시는 분과 함께 땀을 뻘뻘 흘리는 나를 보면 "제가 어떻게 도와 드려야 할지를 모르겠어요"라고 안타까워하는 여직원의 맘을 알고서 "그렇게 알아주니 내가 더 힘이 나네 고마워"라고 답을 하거나 저녁에 마무리하면서 다른 직원에게 이것 좀 마무리 부탁해라고 하자, 그 여직원이 "제가 마무리할게요"라고 하는 것이다. 이에 나는 "내가 저녁에 일정이 있어 먼저 가는 통에 미안하게 되었네"라고 하자 직원은 "아니에요 낮에 그렇게 땀을 흘리고 하셨잖아요"라고 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어땠을까? 철저히 그냥 리더로서 명령으로 일관했을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상호 교환적인 공감을 통할 수 있게 한 것이 바로 리더십과 코칭을 배우고 나서 더 달라진 것들이다. 이런 선택을 한 나에게 동기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값비싼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면서 본전을 다 빼먹고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내가 이것에 대한 진심인 것이다. 조직의 구성원들의 성장을 위해 어떻게 접목하면 좋을지를 생각하지 않아도 때론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나가고 있어서 이다. 

 

  아내를 만나서 혼인한 결정

  아내와 만나서 혼인한 지 20년이 된다. 나의 혼인은 정말 많이 늦은 편인 것이 이미 친구들 중에는 손주의 재롱을 보는 삶에 푹 빠진 녀석도 있기 때문이다. 아내를 만나게 된 것은 학원원장님의 주선에 의한 것이었다. 나를 참 잘 보았던지 혹시 사귀는 사람이 있는지를 물어봤다. 그때는 고객이 소개한 사람을 만나고 고객을 잃어버린다는 이야기를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터라 있다고 얼버무리며 피했었다. 그리고 3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는데 또다시 물어보는 것이다. 좋은 동생이 있는 데 한번 만나보라는 것이다. 이제는 혼기도 지나고 해서 알겠다고 하고 3번은 만나볼 테니 원장님은 나오시지 말고 만나겠다고 했던 것이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있었는지 나도 잘은 모르겠다. 그리고 우리는 만났다. 첫 만남에 아내가 유치원 선생님이었기에 자연스럽게 이야기는 아이들의 교육관 등으로 이어졌다. 꽤 공감이 가는 이야기를 통해 다음에 만나기를 약속하고 헤어졌다.

 

  그리고 그 만남 이후 자주 보게 되고 정확히 4월 12일 만나 11월 16일 혼인을 했으니 혼인 급하긴 했나 보다. 혼인 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이상형을 이야기하다 보니 우리는 만나면 안 되는 사람들이었다. 그것이 나는 누군가를 만나면서 한두 번의 만남에 찢어진 청바지에 점퍼를 두르고 나오는 여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예의를 중요시했기에 예식장에 갈 때도 한여름에도 넥타이를 차고 정장을 입고 다녔었다. 그런데 아내는 두 번째 만남에 그렇게 나왔던 것이다. 그런데 아내는 배 나온 남자를 정말로 싫어했다는 것이다. 지금 나온 배에 비하면 그때만 해도 날씬했었는데(나의 생각)라고 하지만 아내는 아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이상형이 아님에도 혼인을 하게 된 것이 인연이었나 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가끔씩 사무실 일들로 진을 빼고 와서 무언가 나에게 던지는 말들에 짜증을 내거나 하면 모든 것을 받아주며 긍정의 이야기를 해주곤 한다. 밤마다 늦게 만취가 되어 들어와도 여느 집 부인들처럼 바가지를 긁지 않는 다. 그러다 보니 내 주위에 아는 동생들은 아내를 천사라고 한다. 그런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형의 비판적인 성격이나 완벽하려고 하는 것들로 인해 형수가 힘들 텐데 다 받아주지 않느냐는 것이다. 늦은 밤까지 술에 취해 있어도 언제까지 갈게 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왜 이제 왔니? 너는 도대체 집은 생각하는 것이니?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만큼 믿어주는 것이기도 하다. 만약 이런 바가지를 긁어댔다면 아마 매일 부부싸움을 했을 것이다. 나도 지지 않으려고 하는 성격이 있어 억지를 피웠을지도 모른다. 

 

  항상 내편이 되어주려고 하는 아내가 감사할 따름이다. 힘들어도 긍정의 이야기를 해주고 내가 하는 일에 응원을 해주는 것이 참 감사한 일임에도 감사함을 나는 잊고 사는 것 같다. 아내와 혼인을 한 것은 평화로운 가정을 위한 잘한 선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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