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에서 생활하면서 나의 강점은 완벽함이었다. 항상 어떤 일을 하더라도 그것을 완벽하게 마무리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이럴수록 불안감도 함께 작동한다. 어떤 것이 부족한지? 어떤 것을 더 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하면서 말이다. 잠시 과거일을 떠올려 본다. 감정평가서를 종이 석장에 작성하던 시기이다. 이 시점에 나는 지점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처음 중책을 맡고서 자리에 앉았지만 감정평가에 대한 것을 해 본 경험이 부족했다. 손님에 내 앞에 나타나 "이 땅 좀 감정해서 대출이 얼마 나오는지 알려 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이 내게는 두려움이었다. 드디어 그런 손님이 왔다. 감정평가해서 대출을 해달는 것이다. 그 당시만 해도 대충 시세를 평가하거나 부동산에 물어보아서 감정 평가서에 기재하고 감정 가액을 산출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무지 했다. 선배들이 그렇게 해 와서 이다. 어쩌랴! 나도 배운 것이 그것밖에 없는데 라며 차를 몰로 물건지로 달려갔다. 도착한 곳은 맹지에 전답이었다. 공인중개사 사무실도 없고 그저 논에 일하는 사람 몇 명뿐이었다.
"어르신 이 근처 땅 값이 얼마나 하나요?"
"대략 평당 5만 원 정도 하지?"
"아 그렇군요"
한 명에게만 물어보면 적정성에 위배될 것 같아 동네 분들에게 얼굴에 철판을 깔고서(그때만 해도 창피하다고 생각했다.) 물어보았다. 대략적인 시세가 그 정도인 것을 확인하고 돌아와 감정평가서를 만들고 담보와 신용을 보강하여 대출을 실행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금융기관 직원이라는 놈이 이런 것조차 제대로 평가하지를 못한다는 것이 참 한심스러웠다. 그 길로 어떻게 감정 평가를 해야 하는지 알아보기 시작했고, 감정원에서 평가하는 방법을 알았다. 좀 더 우리가 현명하게 판단하게 평가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연구하기 시작했고, 땅은 표준지에 토지 비준표를 토대로 평가하면 된다고 했다. 엑셀로 만들고 작업을 해서 한 장짜리를 만들었다. "이런 땅은 그렇다 치고 건물을 어떻게 해?" 건물을 뭘로 평가해야 할지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알아보니 국세청에서 건물을 평가하는 건물가액이 있었고 감가상각이라는 것을 했다. 이렇게 감정평가서를 만들기 시작했다. 좀 더 완벽하게 하기 위해 그때부터 감정을 하고 감정원에 탁상을 받거나 경매사례를 중심으로 평가를 대조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평가해도 너무 보수적이다. 감정원 감정보다 더 안 나오는 것이다. 다시 알아보기 시작했고, 그렇게 해서 4장짜리 감정평가서를 엑셀로 만들었다. 감정원 탁감과 경매 감정서를 비교해도 크게 차이 나지 않았다. 어느 날 감정평가사 직원을 만나 감정 평가하는 방법을 이야기하자 이렇게 까지 아는 금융기관 직원은 없다는 것이었다. 흡족한 마음도 들었다.
완벽은 더 이상 할 게 없는 것인가?
그렇게 흡족한 상태로 보내는 것도 얼마가지 못했다. 이것이 부족하고 또는 이렇게 평가하는 것이 더 합당하다는 것들이 생기면 어김없이 수정하고 보완하기 시작했다. 완벽하지 않은 것이다. 심지어 100% 정확한 평가서를 만들겠다는 냥 그렇게 만들어 갔다. 참 어리석다는 것을 시간이 흘러서야 알게 되었다. 그렇게 해도 완벽하지 않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까지만 해도 환가를 했을 때 크게 차이가 없었던 것이다. 감정서는 다시 11장짜리로 바뀌고 4장으로 만들었던 것도 사장되었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들도 업무방법서를 토대로 감정서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었고, 그것은 내가 만든 것보다 디테일하게 움직이지 않았다. 감정원도 마찬가지이다. 그들도 그렇게 까지 하지 않는데도 나는 완벽하게 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던 것이다. 퇴직을 하고 제2의 인생을 살려고 준비하고 있다. 지금도 그 완벽을 벗어나지 못하나 보다. 매번 부족하다고만 느끼고 산다. 이런 완벽주의라는 함정에 빠져 살고 있다. 완벽주의는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 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진다. 작은 실수에도 불안해하고 스트레스를 자신에게 준다. 오히려 완벽주의는 목표 달성을 방해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창조적 활동에 제약을 받는다. 너무 높은 기준을 설정하기도 하면서 달성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을 알지 못한다.
진정한 완벽함이라고 하는 것은 더 이상 할 게 없는 것인가? 실제로 완벽한 상태는 존재하지 않는다. 완벽한 상태라고 하면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고 좋았다고 하신 그 순간일 것이다. 매번 개선할 부분들이 존재하며 살아왔음에도 그것을 인정하지 못한다. 어제와 오늘, 오늘과 내일은 분명 수많은 변화로 달라져 있다. 이런 변화에 과연 완벽함이라고 하는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 그것은 불가능하다. 진정한 완벽함은 완벽한 결과를 얻는 것보다 과정에 집중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기도 하고 배우겠다는 태도를 가지는 것이 무엇보다 더 중요함이다. 현실을 직시하고 현실을 반영하겠다는 태도로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 완벽한 결과를 만들어 내려는 노력에는 십분 박수를 보낼 수 있지만 그것에 사로 잡혀 헤어 나오지 못하는 모습은 지양해야 할 모습이다. 내연기관 차량이 출시되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생활화되었을 때 완벽했다. 지금은 어떤가? 이제 내연기관 차량은 완벽한 차량이 아니다. 내연기관을 전기로 바꾸고 자율주행이라는 것까지 갖추었다. 앞으로 세상은 어떻게 변하겠는가? 자율주행을 넘어 자동차가 생각을 하는 세상으로 바뀔지 모른다. 아니 바뀌어 가고 있다. 어릴 적 <전력 Z 작전>의 "가자 키트"가 기억이 난다. 차량을 운전하고 가면서 차량과 소통을 하고 최적의 상태, 목적지, 처리해야 할 상황을 정확히 알려 주었다. 이런 세상이 온다고 해도 완벽함은 없다고 본다.
완벽함은 더 이상 할 게 없는 상태가 아니다. 완벽함의 정의는 정의 자체부터 잘 못 되었다고 본다.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고 생각해서이다. 끊임없이 발전하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완벽한 것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무수히 많은 과정들을 통해 성장해 가는 것이 세상이다. 바로 과정이 완벽함을 만들어 가려고 노력할 뿐이다. 과정에서 배우고 성장한다.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는 자세가 바로 완벽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완벽의 가치는 목표이지만 현실적 한계도 인지해야 한다. 완벽주의라는 함정에 빠져 방향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만들어 가는 모든 것은 완벽하지 않다. 지금 당신이 완벽하게 하려고 하는 것이 있다면 생각해 봐라. 그것을 마무리하면 완벽해지는가? 더 이상 제거하거나 추가할 것이 없는가?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현실에서 목표를 향해 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가? 완벽이 아닌 최선의 선택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스스로에게 물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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