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사진작가가 되려고 했던 적이 있다. 출품을 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보성 녹차밭을 방문했었다. 그때만 해도 사진에 대한 열정이 있었고, 어떻게든 출품을 하고 점수를 따면 사진작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사진을 찍으러 갔던 것이다. 이른 새벽에 전주에서 출발해서 도착한 곳에 짙은 안개가 피어 있었다. 기대를 하고 올라가는 길에 모깃불이 있다.
"이런 이렇게 사기를 치기도 하네?"
잠시 실망감에 그래도 오늘 목표는 달성해야지 라며 녹차밭으로 향했다. 도착한 곳에는 이미 많은 사진작가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서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난리가 났다. 심지어 내 목소리가 크다고 서로 목청껏 부르짖으며 성난 늑대 마냥 소리를 내지르고 있다. 또 한 번의 실망이었다. 잠시 후 어떤 목소리 걸걸한 사람이 수녀님과 비구니 모습을 한 모델들에게 소리를 친다. "야 다시 뒤로 좀 와봐." 인격을 가진 모델들에게 지가 나이가 많으면 얼마나 많다고 저렇게 반말을 하지? 실망의 극을 달린다. 사진작가가 되겠다는 것을 그 순간에 접었다. 그곳에서 사진을 찍지 않고 보성 녹차밭의 다른 곳들만 찍고서 돌아왔다.
갑자기 사진 이야기인가? 숲을 이야기하고 싶다는 생각에 사진을 찍었던 경험이 떠올랐다. 숲은 항상 변한다. 짙은 안개를 만들어 내기도 하고 햇살 한줄기조차 스며들지 못하는 어둠을 펼치기도 한다. 울창한 나뭇가지들은 하늘을 가린다. 습한 공기는 숨을 막는듯한 압박감을 주기도 한다. 새롭게 읽기 시작한 책이 있다. 『세상은 이야기로 만들어졌다』라는 책이다. 이 책을 읽는데 "어두운 숲은 바뀔 수 있다. 하지만 숲을 통과하는 길은 변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읽으면서 새삼 내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과 조우한다. 숨 막히는 압박감과 앞도 보이지 않는 울창한 숲길을 걷고 있는 내 모습이다. 햇살조차 어디에 숨어 버렸는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사진작가가 되기 위해 나섰던 그 모깃불처럼 숲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본연의 모습을 찾아갈 것이다. 언제 끝났는지 모르는 모델들과의 실랑이는 소리도 사라지게 된다. 이렇게 변하고 있는 숲을 나는 보지 못하고 있다. 숲은 봄에 새싹이 돋아나고, 여름에는 푸른 잎들이 무성히 자란다. 가을에는 어여쁜 색동옷을 입은 것처럼 울긋불긋한 저고리를 선물한다. 한 겨울이 되면 순백색의 하얀 솜털이 나뭇가지에 열린다. 어둡다고 생각했던 숲은 이렇게 다양한 색채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숲을 지나야 길을 만난다.
길고 깊은 숲은 어두운 것 같지만 빛을 받고 있다. 숲 안에 있는 우리는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숲 속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고,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숲을 헤쳐나갈 용기와 끈기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숲을 바라보니 지금 삶의 모습이 투영되고 있다.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지만 칼로 나뭇잎들을 쳐내고 있는 모습이다.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조그만 나침반을 꺼내 들어 방향을 보고 있다. 혹여 함정은 아닌지라며 매서운 눈으로 바라보지만 숲 위의 태양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곳을 비추고 있다. 두려움과 위험을 가진 곳이다. 알 수 없는 공포가 가슴을 짓누른다. 하지만 숲을 지나야 한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바로 목표를 향해 가고 나아가고 있다고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인생에서 누구나 어두운 숲을 만나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일 수도 있고, 힘겨운 질병으로 시달릴 수도 있다. 때론 실직으로 인한 힘겨움과 어려움으로 그저 칼로 나뭇잎만을 후려 치고 있을 수도 있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 두려움과 절망에 빠질 수도 있어서 이다. 이 숲을 지나가기 위해 희망과 믿음을 가져야 한다. 결국 숲을 지나 길을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끊임없는 노력으로 어려움을 극복해야 한다.
숲을 걸어가다 보면 한줄기 빛이 내리쬐는 곳도 있다. 항상 숲이 어두운 것만은 아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숲의 꼭대기를 항상 태양은 비추고 있어서 이다. 그렇게 비추는 빛이 조그만 나무들 틈으로 세어 들어와 빛을 보게 한다. 자신이 노력하고 의지를 불태워야 그 길을 지나갈 수 있다. 포기하게 된다면 이 숲이 어디인지 조차도 가늠할 수 없는 곳에서 길을 잃어버린다. 숲을 통과한다는 것은 실로 어려운 것일 수도 있다. 그 숲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더 강해지고 성장하게 된다. 이 숲만 지나고 나면 더 아름다운 세상을 발견하고 새로운 세상에 나아가게 된다. 어둡다고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숲을 통과하게 되면서 성장하게 되기 때문이다. 어려움을 극복하면 극복할수록 나 자신은 더욱 강해진다. 진정한 자신을 찾기도 한다. 이런 경험이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줄 것이다. 숲이 있는 그곳이 변하지 않는다면 그저 통과해야 하면 된다. 인생에 누구나 이런 숲길이 있다. 그런 숲길에 멈추어 버리는 포기해 버리는 사람은 통과하지 못한다. 자신이 선택한 숲을 통과하게 되면 인생이 달라진다. 두려워하지 말고, 지혜를 길러 선택하고 힘차게 나아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인간이 가진 특별함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 갈 수 있는 존재이다. 자신이 만들어 가는 세상에 행복이 오고 그 행복을 세상과 나눌 수 있다.
영화를 통해 본 로빈후드의 셔도우 숲이 대변해 준다. 숲을 통과하는 길은 변하지 않는다는 내용과 비슷해 보인다. 로빈후드는 억압의 시대에 살고 있었다. 잔인한 왕과 부패한 귀족들 틈에서 백성들을 억압하는 시대였다. 이런 시대에 로빈후드는 등장한다. 정의를 위해 싸우고 의적단을 만들어 백성들을 돌보았다. 숲 속에 숨어 다니며 부자들에게 돈을 빼앗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로빈후드에게 영향을 받아 백성들은 희망을 갖는다. 억압에 맞서 싸울 용기를 갖는다.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정의를 위해 싸운 '로빈후드'는 용기를 가지라고 말한다. 숲은 항상 변할 수 있다. 하지만 희망을 향한 길은 변하지 말라고 한다. 그 길을 통과해서 가야만 하기 때문이다.
나 자신은 울창하고 우거진 그리고 어두운 숲을 걷고 있다. 그런 숲도 때론 태양빛을 받으며 빛을 머금고 있기도 한다. 이렇게 변해가는 숲이지만 숲은 그곳에 그대로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 인생도 비슷한가 보다. 열심히 살아가려고 하지만 숲은 그렇게 떡하니 버티고만 있을 뿐이다. 이러쿵저러쿵하지도 않는다. 그저 묵묵히 그곳을 지키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숲을 피해 갈 수는 없다. 목적지가 있어서 이다. 그 목적지를 가기 위해서는 그 숲을 지나가야만 한다. 그 길이 험난하고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길로 가야만 하는 순간이 있다. 좀처럼 앞이 나타나지도 않고 때론 맹수와 맹독에 시달리기도 한다. 이런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어떤 선지자가 길을 내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덕분에 쉽게 숲을 통과하기도 한다. 우리의 삶은 순탄하지 않다. 어떤 이의 삶을 들여다 보아도 순탄하다고 하는 사람들은 없다. 희망을 잃지 않고 자신이 가야 할 방향을 따라가다 보면 목적지에 도착하게 된다.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시간이 오게 된다. '로빈후드'처럼 용기를 가지고 어두운 숲 속이라고 해서 길을 잃었다고 말하지 말고 희망을 향해 발걸음을 움직여야 한다. 세상의 많은 것들은 변한다. 어두울 수도 있고, 밝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세상에 살아간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세상은 변하지 않기에 어렵고 힘들다고 해도 그 길을 가야한다. 그것이 인생이라는 생각이 든다.
"당신은 어떤 숲을 향해 가고 있는가? 그 숲에 도달해 있는가? 그 숲을 걸어가고 있는가?"
"지금 멈추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정말로 멈추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는가? 아님 움직이고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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