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카톡으로 받아 든 사진 한 장에는 여성 3명이 있었다. 그 여성들 뒤편까지 실눈을 뜨고 보란다. 아무리 보아도 잘 보이지 않던 것이 어느 순간 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다. 예수님 얼굴이 나타난 것이다. 평범한 사진 한 장을 바라보았을 뿐인데 그 사진에는 그렇게 존재하고 있었다. 일상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물들 속에는 어쩌면 우리가 듣지 못하는 대화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보고자 하는 것만을 바라보면서 깊이 있는 것을 바라보지 못한다. 관점이라고 하는 것이 그렇다고 본다. 아무리 옆에서 이야기해 줘도 자신이 바라보고 있는 관점을 바꾸지 않으면 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세상에는 우리가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움직이고 보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시각과 관점에서 움직이고 보이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며칠 전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종이컵을 바라보고 아무리 생각을 해보라고 하여도 평상시 일정한 작업만을 해왔던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물 마시는 것, 술 마시는 것 정도로 밖에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관점이 전환되지 않는 것이다. 수많은 시간 동안 한 가지 일만을 해온 과정 때문인지도 모른다.
일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항상 고정된 시각으로만 보려고 한다. 하지만 사진의 예처럼 다른 것들이 존재함을 깨닫지 못한다. 책상을 바라보면 보통은 일과 공부라는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좀 더 다른 관점으로 보면 인생의 동반자라는 것도 있을 수 있다. 전구를 보면 어떤가? 전구는 단지 빛을 밝히는 존재로만 인식하지만 전구는 수많은 시간 동안 경험을 하고 자신의 역할에 충실히 살고 있는 존재이다. 다양한 것들이 있음에도 한정적 시각으로 있다 보니 종이컵을 바라보면서 아마도 물이나 술을 따르는 용도로만 생각했을 것이다. 관점이 전환된다면 어떻게 될까? 종이컵이라고 하는 것을 받침대로도 사용할 수도 있고, 종이컵들을 연결하여 탑을 만들 수도 있고, 종이컵으로 창의적인 것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한 가지 사물에 여러 가지의 관점이 있을 수 있다. 자신이 살아온 삶에 비추어서이기도 하고, 또는 현재 바라보는 관점에서 그렇게 보일 수 있기도 하며, 미래를 상상하면서 관점을 새롭게 볼 수 있다.
매일 같은 길을 걷고, 같은 방향으로 출근을 한다. 익숙한 사람들과 만나 대화도 나눈다. 이런 일상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위해서는 생각과 상상력이 동원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관찰'이 필요하다. 위의 사진처럼 아무리 보아도 보이지 않던 것이 관찰을 통해서 바라볼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출근길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 어제 없던 잎사귀에 꽃이 핀 것, 조금만 관찰하게 되어도 우리는 볼 수 있다. 사이판 여행 중에 호텔 직원이 마당에서 무엇을 유심히 찾고 있는 것이다. 물어보니 중간관리자가 마당에 청소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 직원은 분명히 깨끗이 했는 데 있다고 하니 황당하기도 하고 확인하고 치우기 위해서 나왔다고 한다. 한마디를 거들었던 것이 "중간관리자 눈에만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라고 했다. "아마 분명히 보았을 것입니다. 찾아보심 있을 거예요" 라며 과거 나의 직장 상사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제야 그 직원도 그럴 수도 있겠네요 라며 투덜 거림을 멈추고 열심히 찾는 것을 보았다. 다음은 '질문'이다. 자신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다. 다양한 질문들 속에서 다른 관점을 발견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변화'이다. 변화라고 하는 것은 조금만 관심을 가지게 되면 볼 수 있는 것들이다. 일상의 패턴을 변경해 보는 것이다. 일상의 패턴을 변경함으로써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게 된다. 새로운 카페에서 아침을 시작해 보거나, 평소와 다른 길로 가보는 것이다. 이런 작은 변화가 새로운 영감과 아이디어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사물과 대화
매일 일상에서 수많은 사물들과 마주한다. 사물과 대화를 한다고 하니 미친놈 취급을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물을 우리는 도구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어 조금 다른 관점으로 생각해 보고자 작성하는 것이다. 사물과 대화를 한다고 가정을 하면, 사물을 하나의 객체로 인정해야 한다. 예를 들어, 자신이 쓰는 노트북, 뒷동산에 하루 종일 손님을 기다리는 빈 의자가 지난 시간 공안 겪었을 이야기를 상상해 보는 것이다. 빈 의자라고 한다면 그 의자는 어떤 순간을 함께 했을 까? 아무래도 그 의자는 쉼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앉아서 일상의 대화를 나누었을 것이다. 또한 그 의자는 아이들의 놀이터였을지도 모른다. 올라가고 뛰어내리고 하면서 말이다. 때론 하염없이 내리는 빗물에 젓기도 하고, 눈으로 뒤덮여 형체를 알아보지 못했던 의자이기도 했을 것이다.
빈 의자에게 질문을 한다면 뭐라고 할까? 그동안 이곳을 거쳐간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 있었나요? 아마도 이 질문에 몇 년 치 스토리를 이야기할 것이다. 그리고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반영하면서 답을 한다. 스스로에게 빈 의자처럼 되어 그곳에 앉아 있던 조금 전 자신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 주고 싶나요라고 하면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을 하면서 스스로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깨닫게 되기고 한다. 사물과 대화한다는 것은 창의력을 자극하게 한다. 가끔 어린아이들이 인형과 끊이지 않는 대화를 하는 것을 본다. 이것은 단순한 놀이를 하는 것이 아니라 창의력 사고를 발달시키고 있는 것이다. 성인이 되고 나면 그렇게 하는 것이 미친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고, 쓸모없고, 창피한 생각에 하지 못한다. 그래서 창의력을 확장할 수 없게 된다. 관점의 변화는 이처럼 창의력을 확장할 수 있는 소중한 무기가 되기도 한다.
삶 속에서 보고자 하는 서만을 보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일상을 새로운 시각으로"와 "사물과 대화"라는 것은 일상에서 익숙한 것에 반전을 일으키는 일이 된다. 일상에서 사진 한 장에서 예수님의 얼굴을 발견한 것처럼, 우리가 보고자 할 때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려고 했을 때 보이게 되는 것이다. 주변 사물들도 마찬가지이다. 종이컵, 의자, 전구 등 평소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는 거이지만 이들에게 '대화 상대'로써 가치가 부여되는 순간 우리의 창의력은 더욱 확장된다 빈 의자에게 이야기를 듣고 그 의자가 겪은 수많은 이야기들을 상상하면서 일상에 깊이를 더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새로운 사고방식을 만들어주고 창의력이 확장된다. 생활 속에 관찰하고, 질문을 하며, 작은 변화를 바라볼 때 예상치 못한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이처럼 관점을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고 단순화된 패턴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을 바라봄으로써 세상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힘을 기르게 된다고 본다. 관점을 다르게 바라보는 일은 삶에서 가장 추구하는 중요한 변화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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