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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근시대의 삶(50대의 하루의 삶)

아픔은 글로 피어나는 씨앗이었다.

by Coach Joseph 2025. 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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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고통스러운 순간들을 맞이한다. 어떤 이는 그저 묵묵히 견디며 지나가고, 또 어떤 이는 고통 속에 휩싸여 방황을 하기도 한다. 나에게도 그런 시간들이 있었다. 삶이 불확실했고, 마상을 입으면서 가슴에 커다란 상처가 남았다. 욕을 하면서라고 한방 먹였어야 했지만, 조직을 생각하고 미래를 생각하고 신앙인이라고 하는 것이 마음을 꾹꾹 누르게 했었다. 그 일이 있은 후부터 일상은 파괴되었다. 온몸에 힘이 하나도 남지 않고, 화는 머리끝가지 나 있었다. 여기에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자신에 대한 존재 이유를 잃어가는 분위기였다. 마음 한편에 지울 수 없는 상처가 자리 잡았고, 시간이 흘러도 쉽게 아물지 않았다.

 

  우연한 기회에 컴퓨터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매일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마음의 상처에 대한 성토의 장 밖에는 되지 않았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이었다. 거창한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지금 내가 느끼는 것을 적고 싶었다. 한 단어씩, 한 문장씩 적어 내려가며, 내 안의 감정들을 들여다보면서 왜 이런 것을 하고 있는지 조차도 생각하지 않았다. 이것이 나를 위로하고 있다는 생각도 못했지만, 시간이 흘러가면서 기록 이상의 의미가 있음을 깨달았다. 글쓰기는 자신이 겪는 고통을 바라보게 하고, 그것을 통해 고통을 넘도록 도와주는 통로가 된다는 것을 말이다. 지금도 좌하지 통증으로 고생을 하고 있다. 걷기 힘들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시간이다. 육체적 고통을 글로 표현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생각해 본다.

Pain was the seed that blossomed into writing.

 

  고통의 정체를 본다.

  고통이라고 하는 것은 때로는 모호하고 불명확하다. 마치 두꺼운 안개처럼 자신을 둘러싸고 혼란스럽게 만든다. 나 역시 그랬다. 왜 힘든지, 무엇이 나를 괴롭히는지 분명하지 않았다. 다만, 자신의 마음을 무작정 적어갈 뿐이었다. "왜 화가 나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물었다. 하지만 글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누군가 이 글을 보게 될 것이라는 불안감에 정제하고 또 정제해서 표현했다.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끊임없이 표현하고 물어보았다.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는 글을 써가면서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 말이다. 그렇다고 그것을 당장에 실행할 수 없었다. 조직의 구성원들이 아직 성장하지 않아서였다. 그들이 성장하는 순간까지는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이들이 자생할 수 있는 시간까지 그리고 정년을 채워야 한다는 생각이 가득함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더 화가 나고, 감정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는 것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혼란스러운 감정들을 언어로 구체화하고 그것의 정체가 조금씩 드러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나는 글을 쓰며 내 고통의 근원을 파악하고, 극복해야 할 문제임을 깨닫기도 했다. 

 

  글을 쓰면서 억눌려 있는 감정들이 밖으로 나왔다. 슬픔, 분노, 좌절, 외로움들의 감정들을 밖으로 끄집어내었다. 다만 블로그에 그 감정들을 그대로 적을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마음에 가득한 구정물을 밖으로 조금씩 꺼내어 배출이 되는 느낌이 있었다. 글쓰기는 자신의 감정을 해소하고 정리하는 과정이 된다. 그 글을 마음 밖으로 꺼내는 작업만 해도 큰 일을 한 것이다. 나를 괴롭히는 기억을 떠올리면서 글을 쓰면서 다시금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기도 한다. 글로 표현된 고통은 내 머릿속에서 그림자로 있었던 것을 알게 한다. 그 기억들을 떠올리며 다시금 깨끗한 물을 부어주고 정화시키는 작업을 한다. 책을 읽는 중에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글을 쓰라는 내용을 읽으면서 과거의 고통스러웠던 순간이 떠올랐다.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삶을 선택하는 상황이 되어서였고, 지금도 그래서 글을 쓰고 있다. 

 

  치유의 도구

  정신적 고통에서만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육체적 고통 중에도 글쓰기는 중요하다고 본다. 나는 지금 육체적으로 매우 힘들다. 허리에서 오는 좌하지 통증과 방사통을 벌써 2주가 지나가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매일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운동과 적외선 치료, 저주파 마사지를 하고 있다.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간에도 저주파 자극기를 허리에 붙이고 글을 쓰고 있다. 몸이 아프니 자신의 한계를 더 극명하게 느끼게 된다. 글쓰기로 극복해 볼 수 있는지는 모르지만, 현재의 자신을 보면서 글을 쓴다. 허리 통증은 지금 이 순간을 직시하게 한다. 몸이 아프니 미래나 과거를 생각할 겨를이 없다. 그저 누워서 적외선과 다양한 마시지를 통해 치료하고 멍 때리며 유튜브를 보고 있다. 그러면서도 현재에 집중하게 한다. "이 고통은 언제 끝날까?"라는 생각이 제일 많이 든다. 고통에 내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바라본다.

 

  ChatGPT 강의를 매주 열기로 했지만 하지 못하고 있고, 다음 달 어린이 경제교실 강의 준비도 해야 하는데 손을 못 대고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은 건강이 제일 먼저임을 알게 하고 그동안 '잘못된 자세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구나'라는 생각에 반성도 된다. 고통이 강도가 강렬하게 느껴지면서 MRI를 찍고 수술을 해야 하는지? 이 고통을 이기면서 자세를 교정하고 고통을 이겨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된다. 고민을 거듭하며 자신의 한계를 바라보게 되고, 나 자신을 좀 더 이해하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글쓰기를 하면서 놀라운 것은 매번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는 긍정의 마인드를 가진다는 것이다. 내가 겪는 아픔이 나만이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누구나 다양한 고통 속에서 살아간다. 글은 자신을 바라보게 하고 아픔이 있다면 치유를 시켜주는 도구가 된다. 한 번 시도해 보길 바란다.


 

  글쓰기는 감정을 쏟아내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감정을 쏟아내고, 그것으로 자신을 이해하고 자신이 겪는 고통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그저 의미 없이 쏟아내는 낙서장의 글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 글들을 약간은 정제된 글로 표현하는 글을 써야 한다. 그래야 고통을 극복하고 나면 새로운 희망을 찾기 때문이다. 나는 글을 쓰면서 자신과 대화하는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 오늘 쓰는 글도 역시 나와의 대화의 시간이다. 글쓰기가 자신과의 대화에서 끝이 나지 않는다. 세상과 연결이 되어 다른 이들에게 다리가 되기도 한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아픔은 반드시 끝나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성장하게 만들고 있음을 말이다. 글쓰기를 통해 자신이 겪는 고통을 일부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이야기로 바꾸는 과정에서 더 단단하게 만들어 준다. 육체적 고통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당장에는 힘들고 어렵겠지만 어느 날 자신이 육체적 고통으로 힘들었던 순간을 찾아 읽게 되면 그 순간을 떠올리고 현재의 삶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된다고 본다. 당신도 지금 고통 속에 있다면 어떤가요? 지금 펜을 들어 보시던지? 컴퓨터를 열고 블로그를 개설하여 글을 써보시던지? 선택은 당신의 몫이지만 글쓰기로 조금씩 변화되는 자신을 보게 될 것이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당신이 최근에 겪은 감정은 어떤 것인가요?"

  "그 감정을 글로 표현해 본다면 어떤 단어로 시작하고 싶은 가요?"

 

https://bit.ly/HappyGrowth

 

백근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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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백근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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