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간만에 영화관을 들렀습니다. 아내가 영화를 보러 가자고 하면서 "당신이 좋아할 만한 영화야"라고 하더군요. 아 내 덕분에 영화를 보러 가는데 생각해 보니 해마다 6편의 공짜 영화를 볼 수 있는데도 못 보고 있었습니다. 그나마 이렇게 함께 보게 되어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 영화는 바로 브래드 핏 주연의 'F1 더 무비'였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마치 F1 그랑프리 대회 현장에 있는 듯한 박진감에 빠져 들었습니다. 엔진소리, 바람을 가르는 속도감, 그리고 한순간이 실수가 모든 걸 바꿔버리는 긴장감까지 전달이 되더군요. 하지만 정작 제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영화 속에 나온 대사들이었습니다.
"너 자신에게 집중해. 너의 시간은 지금이야. 딴 데 보지 말고 달려."
"느리면 부드럽고, 부드러우면 빠르다."
영화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메모장에 살짝 메모가 되었습니다. 그런 이유를 떠올려 보니 레이싱을 하는 조언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인생의 지혜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현재에 나에게 집중하라.
영화 속의 대사는 제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나에게 집중하라. 지금처럼 꾸준히 가라. 서두르려고 하지 마. 느리지만 부드럽게 하면 결국 더 빠르게 도달할 수 있다." 생각해 보니 우리는 참 이상한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모든 게 빠르게 진행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가득합니다. 과거 입사를 했을 때 면접을 보신 분의 이야기를 직장 상사가 들려준 적이 있습니다. 제가 입사를 할 당시에는 금융기관에 입사하는 친구들은 다 '상업계 고등학교'를 나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면접을 보신 분이 인문계 나온 친구들을 뽑으면 지금 당장에는 더딜지 몰라도 더 많이 성장할 수 있어서 뽑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더 열심히 했던 것 같습니다. 부기를 모르면서도 매일 결산자료인 일계표를 보고 또 보았습니다. 그 결과 어느새 많은 것들을 알고 있는 순간이 왔습니다.
성장을 우리는 빠름에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 대한민국은 더 그런 것 같습니다. 빠른 성장, 빠른 성공, 빠른 결과, 마치 F1 그랑프리 대회의 경주를 하는 자동차처럼 말입니다. 이것이 모든 것을 다 해결해 줄 것처럼 살아갑니다. 하지만 영화 속 또 다른 주인공 '죠수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기다리지 못하고 빠르게 추월하여 나아가려고 하다가 결국 큰 사고를 내고 불길에 휩싸여 부상을 당하고 맙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3위였던 주인공 '소니'가 우승을 합니다. 트랙에서 빠른 자동차가 우승하는 것은 아닙니다. 가장 안정적이고 꾸준한 차가 결승선을 통과하는 것입니다.
느리지만 부드럽게, 그것이 진짜 빠른 길
"느리면 부드럽고, 부드러우면 빠르다." 이 말을 들었을 때는 그저 좋은 말처럼 생각되었습니다. 하지만 집에 돌아오는 길에 계속 곱씹게 되는 말이었습니다. 왜 느린데 부드럽고 빠르지? 모순이라는 생각도 들더군요. 어떻게 느린데 빠를까? 순간 토끼와 거북이가 떠올랐습니다. 점점 이해가 되어 가더군요. 급하게 서두르면 실수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수하면 다시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더 많은 시간을 허비해야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느리지만 꾸준히 하면 어떨까요? 느리면 답답할 수도 있지만, 여유가 생기고 부드러워집니다. 이는 결과적으로 목적지에 더 빨리 도달할 수 있게 해 줍니다. 마라톤 선수들을 보면 전력질주하는 사람들이 있나요? 있기도 하지만 중간에 지쳐 넘어지게 될 것입니다.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하고 꾸준히 그리고, 묵묵히 달리는 선수가 결국 결승선을 통과하게 됩니다.
문득 뇌리에 브래드 핏이 주연한 영화 '머니볼'이 스치고 지나갑니다. 영화를 보면서 뇌리에 가장 강렬함을 주었던 영화입니다. 마지막 장면 중에 2군에서 뛰는 거구 선수 제레미 브라운의 이야기입니다. 2루로 달리는 것을 두려워하지만 2루를 달리기 위해 노력을 합니다. 그는 용기를 내어 달리다 1루를 지마 넘어지고 맙니다. 살기 위해 기어서 1루로 돌아오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 순간 그는 멋진 홈런을 친 것이었습니다. 담장을 60피트나 넘겨버린 것이었습니다. 자신이 이미 해 냈음을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삶도 그렇다고 생각이 듭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평범해 보이는 일일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매일매일의 작은 노력들, 남들이 바라볼 때는 느려 보일 수 있는 일이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자신의 걸음걸이로 가고 있는 나는 "의미 있는 홈런"을 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지금 이 순간 나 자신에게 집중하고, 나의 시간이 지금임을 아는 것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지금 이 순간'을 놓치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걱정하며, 정작 중요한 현재의 소중함을 놓치고 있습니다. 주위의 있는 사람들의 시간이 얼마나 빠른지, 얼마나 멀리 가고 있는지, 뒤에 따라오는 차는 얼마나 많은지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F1 드라이버에게 중요한 것은 다른 차가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 내차의 상태, 내 앞에 있는 트랙, 그리고 다음 코너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자신이 바라보고 가야 할 곳을 바라보고 가는 것, 그것을 위해 현재를 바라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영화관을 나오며 집에 돌아오는 길에 아내에게 감사함을 전했습니다. 이런 영화를 볼 수 있게 해 줘서라고 말이죠. 빠름보다 중요한 것은 꾸준함입니다. 완벽한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나만의 속도이고, 무엇보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것이 소중한 시간이 됩니다. 너무 빠르게 가려고 하고 있지는 않으신가요? 너무 조급해하고 있지는 않으신가요? 잠깐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당신은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당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이미 홈런일 수 있습니다. 다른 차선, 다른 트랙, 다른 차량을 보지 말고, 오로지 당신의 차량, 트랙, 차선에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느리면 부드럽고, 부드러우면 빠릅니다. 당신만의 속도로, 당신만의 방식으로 달려가면 됩니다.
백근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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