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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근시대의 삶(50대의 하루의 삶)

밖으로 꺼낸 생각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관문이 된다.

by Coach Joseph 2023. 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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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반전을 꽤한적이 있었던가? 그저 지나가는 하루는 내인생의 찰나의 시간이라 치부하고 그냥 흘려보내지는 않았는가?
장문 카톡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반전을 꽤 한 적이 있었던가?로 시작하는 첫 문장의 장문 카톡이다. A4로 2~3장은 족히 되어 보인다. 이런 내용의 카톡을 받고 나는 답장을 쓰기 시작했다. 시작부터 끝까지 조건 반사처럼 자동적으로 그냥 글이 쭉쭉 써져 간다. 삶에서 어떤 반전을 맞이하면 좋은 것일까?  반전을 꿈꾸고 행동하지만 오히려 역반전으로 삶이 꼬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시간을 마냥 기다리기만 한다면 어떤 결과도 가져올 수 없을 것이다.

  먹고 살기 위해 포기해야만 하는 삶들이 많지요 ~~ 그러면서 내가 사는 것이 그렇고 다른 이들도 다 그렇게 산다고 치부하면서 하루하루를 견디어 내고, 그럭저럭 시간이 흐르고 나면 정년이라는 것을 맞이하게 되고 자조 섞인 어투로 "모두가 그렇게 살아왔어"라고 할 것이다. 먹고살기 위한다는 핑계는 정년 이후의 삶에 대한 대비가 되지 않게 되고 삶의 새로운 전환점이 되는 것이 아닌 종착역처럼 처량하고, 우울하며, 허전한 시간들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생각을 밖으로 꺼내야 한다.
  꿈이라고 하는 것은 꾸지 않으면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이다. 돈이 드는 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꿈을 꾸지 않는다. 그것이 무서운 것도, 돈드는 것도,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는 것도 아닌데 왜 사람들은 꿈을 꾸지 않는 것일까? 스스로들은 그렇지 않다고 반박하고, 언성을 높이며 달려들며 꿈을 꾼다고 하지만 진정한 꿈은 밖으로 나오게 실천하고 행동하고 있는 것이 꿈을 꾸고 있는 상태이다. 안에서 속으로 머릿속으로 꿈을 그려 본다고 한들 실행이 없고, 행동이 나오지 않는 것은 꿈이라고 할 수 없다.
 
  로또 1등의 꿈을 꾸면서 로또를 사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되지 않을 것이라고 스스로 이미 결론을 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있는 그래서 내리막에서 오르막으로 공을 차면 절대 상대방 골대로 골을 보낼 수 없다고 스스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러니 꿈을 꾸지 않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새로운 미래를 위해 꿈을 꾸고 있다. 당장에 책을 손에서 놓지 않고 있고 나의 페이스메이커와 함께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며 장문의 글을 써주면서 이야기를 한다. 마치 조선시대 선비가 시 한수 읊조리면 화답의 시를 읊조리며 술안주가 되고, 삶이 되는 것처럼 서로를 부추기고 격려하고 응원과 지지를  하고 있다.

  바로 무수한 생각들이 밖으로 나와야 한다. 그래야 꿈의 크기를 직감할 수 있다. 크게 생각하는 사람이 크게 되는 이유는 간단한 것이 너무나 큰것이기에 자기의 머릿속에 담아 놓을 수가 없게 되고 지속된 생각에 생각이 쌓이면서 주체할 수 없어 밖으로 나오게 되어 꿈의 크기와 만나게 된다. 이런 만남은 결국 꿈을 실현할 원동력으로 작동을 하고 책상 앞, 냉장고 등 자신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그 꿈들을 적어나가는 것이다. 처음부터 꿈을 꾸고 뚝딱하고 이룬 사람은 없다. 꿈을 이루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하고 그것이 바로 생각이며 밖으로 쉽게 나올 수 있는 파이프라인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것이 글쓰기 일수도 있고, 책을 읽는 것일 수도 있으며, 유튜버를 보거나, 공부를 하거나 그 어떤 것일 수도 있다. 다만 그것을 하고 있느냐 하고 있지 않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어떤 사내가 금을 캐보겠다고 땅을 파는 것을 본다. 처음에는 저사람이 땅을 왜 파고 있지라면서 호기심을 갖지만 "이곳에서 금을 캘 거요"라고 말하는 순간, "이런 미친놈"이라며 손가락질을 하고 저러면 금이 나오지 않는다면서 스스로들의 분석과 과학적 지식을 동원하고, 삶의 배움을 통해 안된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계속해서 파고 또 파고 들어간다. 정말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며
 
"정말 내가 무모한 짓을 하고 있나? 정말 안되는 걸까?"
 
  이런 생각들을 하기 시작하게 되고 그에게 손가락질 했던 사람들의 말이 옳았음을 인지하고 땅을 그대로 놔 둔채 떠나 버린다. 어느 날 어떤 이가 땅이 깊이 파인 것을 보고 왜 이곳을 팠지? 라며 주위사람들에게 물어본다. "어떤 미친놈이 금나온다고 이곳을 팠다오"라는 말에 어떤 이가 땅을 파보게 된다. 얼마 파지 않아 노란빛이 돌고 파보니 금맥인 것이다. 이것은 내가 즉흥적으로 떠올려 본 글이다. 인디언들이 기우제를 지내면 비가 온다고 한다. 이유는 참 어이없다. 바로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낸다는 것이다. 안 올 수가 없다. 우리의 생각을 밖으로 꺼내고 또 꺼내고 하여 꿈의 도구로 이용하고 그 꿈을 이룰 때까지 하면 이룬다. 
 

세상으로 나아가는 문

  세상으로 나아가는 과정의 시간
  햇볕을 쬔다는 것은 뭘까? 하늘의 먹구름이 요즘처럼 가득한 시간을 보내다 보니 맑은 하늘이 그리워진다. 잠시 어제 오전에 보여준 파란 하늘은 정말 예뻣다. 13년 전 호주의 맑은 하늘을 바라본 것처럼 깨끗하고 맑았다. 잠시 추운 곳에서 맞이하는 햇볕은 따뜻함을 주지만 태양빛의 이글거림으로 뜨거운 태양은 반갑지만은 않다. 그래도 일단 나가보라고 햇볕을 한번 보라고 그래야 두려움에서 벗어난다고 이야기를 한다. 해보지도 않고 먼저 겁부터 먹는 나 자신의 과거의 모습에 부끄러움이 가득하다.
 
  항상 그랬던 것이 해보지 않고 않되는 것과 어려운 것만을 생각하며, 어떻게든 되게 하기 위해 노력을 하면서도 안 되는 이유, 실패하는 이유 들만을 늘어놓으며 포기하는 것들이 많았다. 물론 끝까지 물고 늘어져 해낸 것들도 있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자신감도 많이 상실되어 간다. 그러나 요즘 다시 의욕을 불태우는 것이 과거에는 생각을 밖으로 꺼내기보다는 그 생각 속에만 머물렀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바로 이 작은 실천들을 하고 있지 않은가? 걱정한다고 일이 생길 것이 안 생기고 안 생기는 것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생길일은 생기고, 안 생길 일은 어떻게 해도 안 생긴다. 일단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작은 도전이라고 생각했던 글쓰기가 이제는 상식적이지 않다고 나에게 말하는 이가 있다. 

  매력있는 나를 만들어 간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코치로써 성장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표정이 변하고 있고 환한 얼굴의 나를 마주할 때도 있다. 다만 요즘은 조직에서는 코치보다는 약간 코치를 가미하면서 살짝 힘으로 밀어보고 있다. 그런 과정이 조직이 발전하게 되고 성장하게 되는 과정이 될 것이라는 믿음에서이다. 힘들어지면 다시 수정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한번 해보는 것이다.
 
  운명이란 노력하는 사람에게 우연 이란 다리를 놓아주는 것이라고 한다. 나는 어떤 운명의 다리를 지금 어디쯤 건너고 있을 까? 어떤 우연이 내게 미래의 꿈에 도달하게 할까? 요즘은 이렇게 기도를 한다. "당신이 주관하시는 나의 삶이기에 제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다만, 삶 속에 살아갈 뿐입니다. 제 뜻대로 하지 마시고 하느님 당신 뜻대로 하소서"라고 기도를 한다. 삼국지의 "모사재인이면 성사재천"이라는 말이 있다. 정말로 최선을 다해 사마의 삼부자를 호로곡에 가두어 버리고 화공을 빌려 불을 질러 죽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 순간에 하늘에서 요즘 같은 비였는지는 모르지만 쏟아져 내렸고 결국 살아서 위나라로 도망을 간다. 이 모습을 보고 제갈량이 하늘을 보며 탄식을 한 글귀이다.
 
  열심히 하고 잘하고 싶고 만들고 싶고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도움과 우연, 그리고 인연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인연과 우연들이 만들어 져가고 있다. 강의를 하고 싶다고 오랜 시간 동안 이야기 했더니 인연에 의한 우연한 기회로 3시간 강의를 하는 과정을 만들어 가고 있다.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히 했을 뿐인데 동기들끼리 공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브런치 작가를 신청하자 브런치 출판 프로젝트가 있음을 알게 한다. 이런 것들이 우연이 되고 우연이 지속되면 필연이 되는 것이다.
 
** 긍정의 한마디(완료형): 하루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하루가 되었고, 모든 일들이 술술 풀리는 하루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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