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살아가다 보면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는 때가 있다. 분명히 자신은 무엇을 좋아한다고 이야기를 했지만 정작 그것과 마주했을 때 정말 내가 좋아했나?라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더욱더 그렇다.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고, 주말에는 쉬는 것이 전부인 것처럼 살았는데 정작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라는 질문을 받게 되면 당혹스러운 경우들이 있다. 직장 생활을 할 때 그랬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잘 몰랐다. 어렴풋이 새로운 것들에 대한 관심이 많은 정도라고만 생각했다. 퇴직을 하고 나서 가장 고민이 되었던 부분 중에 하나이다. 무엇을 좋아했는지보다. 무엇을 잘했는지에 더 초점이 맞았던 것 같다. 결국 29년의 세월 동안 나의 눈을 가리고 달려온 셈이다. 만일 오늘부터 1주일을 눈을 가리고 생활한다면 어떨까? 아마도 전혀 다른 세상과 조우할 것이다. 촉감에 의지하고,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냄새로 길을 찾을 것이다. 길을 모르면 멈추고 물어야 하지만 우리는 그동안 직진 본능에 충실했다.

자기 이해의 첫 번째 원칙은 바로 '막히면 멈춰라"이다.
"The curious paradox is that when I accept myself just as I am, then I can change."
(흥미로운 역설은 내가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칼로저스 "On becoming a Person: A Thearpist's View of Psychotherapy" 중에서
칼로저스의 말처럼 자신을 받아들여야 변화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간단한 것이 정말 어렵다. 왜냐하면 중도에 멈추지 말고 가는 것을 훈련받아서다. '포기하지 마, 끝까지 해 봐. 중도에 그만 두면 안돼' 이런 말들이 항상 머릿속에 남아 있다. 그래서 길이 막혀도 뚫고 가려고 시도를 하게 된다. 하지만 진짜 자기 이해는 멈춤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저는 하루 중에 잠시 멈추고 생각하는 경우들이 있다. 지금 내 기분은 어때? 현재의 기분은 알딸딸한 기분이야. "오래간만에 한가위 명절에 동생이랑 한잔 했거든." "지금 내가 하는 일을 나다운 거야?" "알딸딸한 상태인데도 글을 쓰고 있네. 이것은 정말 나다운 것이지?" 오늘 나는 어떤 선택을 했어? 오늘 하루 종일 독서토론과 관련된 것을 준비하고 틈에 나면서 생성형 AI 자소서 강의안 초안을 만들었지? 쉬지 않고 일을 하는 선택을 했어. 이런 질문들이 반복이 되면서 나 자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현재의 기분을 바라보고, 내가 하는 일이 정말 나다운지를 살피며, 내가 선택한 것에 대해 나를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다.
직장 생활을 했던 시간에는 정말 일어나기 싫은 날도 있었다. 때론 출근길이 지옥이었던 적도 있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중간관리자로서 위와 아래에 샌드위치가 되기 시작했던 때부터였나 보다. 이때 가장 많이 생각했고, 들었던 것이 "직장인은 원래 다그래. 그렇게 하면서 사는 거야."라는 말이었다. 결국 나는 계속 전진만 했던 것이다.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은 단 10분도 없었던 시기였다. 오로지 조직을 위해 열심히 일했었다. 이럴 때 탈출구가 되어준 것이 사진이었다. 새벽 4시에 일어나든, 밤을 꼬박 새우고 사진을 찍든, 온몸에 모기밥이 되어 봉우리를 만들어조 즐거운 시간이었다. 하지만 가장 힘들고 어려운 시기에는 출사는커녕, 내가 좋아하는 것들도 다 양보를 해야 했다. 그러는 사이 "야, 너 지금 힘들어" 하고 말을 해준 것은 바로 나의 몸이었다. 그렇게 2년 전 퇴직을 했다. 그리고 작은 변화들을 만들어 가고 있다.
눈을 가리고 달렸던 시기가 후회의 시간이라는 것이 아니다. 그 시간을 보내고 지금 여기 있으니까. 다만 이제 눈을 좀 뜨도 살자는 것이다. 길이 막혔는데도 그것을 무모하게 뚫고 가자는 것이 아니다. 잠시 그곳에 서서 생각하고, 뚫어야 한다면 뚫고 가는 것이고, 옆길로 돌아갈 수 있으면 돌아서 자신이 원하는 목적지로 향해 가라는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길로 가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길 바란다. 답이 없을 수도 있고, 시간이 흘러 답을 찾을 수도 있다. 이렇게 자신에게 질문하는 것이 시작이다.
백근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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