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로서 자녀와의 관계에서 가슴 아픈 순간이 있으신가요?
나 역시 그렇다. 나는 나름대로 자녀들에게 잘했다고 믿어왔다. 그런데 딸과의 관계 속에서 나에 대해 깊은 응어리가 자리하고 있는 딸을 깨달았다. 고기를 구워 먹던 자리였다. 아내가 바싹 구운 고기만 먹는다고 하자, 나는 무심코 말했습니다. “봐봐, 안 먹는 게 있잖아. 어릴 적에 안 먹어서 그런 거야.” 그러자 아내가 "파는 정말 못 먹었는데 지금은 먹잖아. 꼭 그렇지 않아."라고 하자, 딸이 한마디를 던졌다. “어릴 적 버섯을 먹으라는 게 정말 싫었어요. 그래서 지금도 안 먹을 거예요. 그런데 앞으로도 절대로 먹지 않을 거예요." 순간, 심장이 멎는 듯했다. 편식하지 않기를 바랐던 내 마음이 아이에게는 상처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선의의 강요가 아이에게 남긴 흔적
나는 딸이 건강하게 자라길 바라는 마음으로 “한 입만 먹어봐”, “조금만 먹어봐”라며 권했다. 하지만 그건 내 기준의 ‘선의’였을 뿐, 아이의 감정과 선택을 존중하는 방식은 아니었다. 딸에게는 ‘먹기 싫은 음식을 억지로 먹어야 하는 순간들’이 반복된 강요로 남았나 보다. 그때마다 아이는 내 눈치를 보며, 자신의 감정보다 ‘아빠의 기대’를 더 우선시해야 했을 것이다. 그 작은 순간들이 “네 감정은 중요하지 않아”라는 메시지로 각인되었다는 생각도 든다. 나는 정말 건강한 아이로 자라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식탁에서 '한 입만 먹어봐'라며 온갖 아양을 떨었던 적도 있었다. 싫다는 말을 들었는데도 "이건 너를 위해서 그런 거야. 한 입만 먹어보자."라고 강요를 했었다.
아이의 마음속에 남은 건 ‘사랑의 노력’이 아니라 ‘통제의 기억’이었다. 나는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 선의가 아이에게는 상처가 되었나 보다. 심리학에서 ‘안정적 애착’이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여진다’는 경험에서 생긴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의 입장에서 나는 ‘받아주는 사람’이 아니라 ‘기준을 제시하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사실이 내 마음을 무너뜨리고 있다. 사랑은 때로 ‘행동’보다 ‘멈춤’으로 표현될 때가 있다. 멈춘다는 것은 포기가 아니라 성찰의 시작이다. 그동안 내가 아이를 위해 쏟았던 말과 행동의 방향을 잠시 멈추고 돌아보는 일, 그것이 진정한 사랑의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한 입만 먹어봐” 대신 “그래, 네가 싫다면 안 먹어도 돼. 대신 이유를 들어보고 싶어.” 이 한마디가 관계를 바꾸는 시작이 될 수 있었을 것인데 말이다. 딸의 '절대로 먹지 않을 거예요'라는 것이 반항으로 느껴지고 있다. 아마도 다른 표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지금 내 마음은 그렇게 느껴지고 있다.
나는 사랑을 주었는데, 아이는 그 사랑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렸다. 그 사실이 머리로는 이해되지만, 가슴은 여전히 받아들이지 못한다.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애써온 시간들, 그 수많은 기억들이 한순간에 의미를 잃어버리고 있다. 이건 단순한 후회가 아니다. 정체성이 무너지는 경험이다. ‘나는 어떤 아빠였을까?’라는 질문이 나의 가슴을 커다란 돌덩이가 누르는 것처럼 무겁기만 하다. 혹자들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요.”라고 할지 모르지만 지금의 나는, 그 말이 위로처럼 들리지 않는다. 회복이란 단어는 너무 멀다. 마음이 뒤엉켜 있다. 애써 쌓아 올린 선의의 탑이 무너지고, 그 잔해 속에서 길을 어디로 발걸음을 옮겨야 할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지금 멈추어 보려고 한다. 가끔은 멈추어야 보이는 것들이 있으니 말이다. 멈추어 봐야 존재를 볼 수 있다고 했던 것처럼 자녀와의 관계도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의 표정, 말투, 그리고 그 안의 감정까지, 그동안 보지 못했던 진심이 그곳에 담겨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보고 있다. 하지만 멈추어지지 않는다. 멈춘다는 것은 마음을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그 혼란을 온전히 느끼는 일인데 느끼도 싶지 않아서 인가 보다. 지금 나는 온통 혼란스럽다. 후회, 서운함. 미안함, 억울함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그 모든 감정의 지금의 나를 흔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혼란을 견디어 내야 한다. 그게 지금은 싫은가 보다. 언제나 되어야 아빠의 진심을 알고서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까? 지금은 모르겠다. 다만, 이 혼란의 시간이 나를 더 인간답게, 더 아빠답게 만들어 주길 바랄 뿐이다. 그래서 오늘은 회복이 아니라 혼란의 가운데이서 이렇게 조용히 멈추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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