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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근시대의 삶(50대의 하루의 삶)

10년 넘게 함께한 이들을 떠나보내려 한다.

by Coach Joseph 2025.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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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 시간 함께했던 곳을 떠나려고 한다. 내가 바랐던 것은 단순했다. 조직이 조금 더 건강하게 운영되고, 후배들이 내가 겪었던 어려움을 반복하지 않기를 바랐다. 나는 그저 나의 역할을 충실히 하려 했을 뿐이다. 그래서 제도를 바꾸고 시스템을 개선하려 했지만, 그들은 내 말을 비난으로 들었다.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듣기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듣기를 하지 않는다. 정작 “경청하라”라고 말하면서도 그들은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말보다 귀가 필요한 순간에 그들은 말을 앞세웠다. 나는 그런 모습이 가장 힘들었다.

 

  나는 늘 욕을 먹지 않기 위해, 두 배 세 배의 노력을 기울였다. 누구보다 성실히, 조용히 맡은 일을 감당했다. 그러나 그 수고를 알아주는 이는 많지 않았다. 그것을 알아달라고 하지도 않았다. 자신이 피해자라고 아우성칠지 모르지만, 정작 나야말로 비난과 오해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회의 중의 비판도 감수했다. 때론 험담 속의 조롱을 하고서도 내 앞에서는 언제나 착한 사람처럼, 인자한 사람처럼 행동하는 역겨운 모습도 나는 감내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조직이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하나로 견뎠다. 그러나 견딜수록 마음의 상처는 깊어졌다.

  나는 무엇을 바랐던가?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은 “인간은 인지편향적 존재”라 했다. 세상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자신만의 필터로 바라본다고 했다. 생각해 보면 나 또한 다르지 않다. 지금의 이 감정도 어쩌면 나의 필터를 통과한 왜곡된 시선일지 모른다. 그래도 분명한 건, 상처를 준 말과 행동들이 내 안에 오래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남의 실수는 잘 기억하고, 자신의 잘못은 쉽게 잊는다. 나 또한 그들의 실수가 아직도 생생하다. 처음엔 단순한 엑셀 파일을 주고받는 일 하나에도 불만이 쏟아졌다. “나보고 개고생 하라는 거냐? PDF로 주면 이것을 다 한글로 다 적어야 하는데 왜 이렇게 주냐?”라며 면박을 주었다. 자신에게 주어야 하는 파일을 미리 주어야 작성한다며 비난을 하고, 면박을 주었던 본인은 정작 미리 주지도, 때로는 아예 보내지 않았던 적도 있었다. 겨우 전화를 해서 보내달라고 하면 보내 주거나, 보내주지 않아 임의로 작성한 적도 있었다. 이번에 나는 다시 깨달았다. 사람은 언제나 ‘자기중심적’이라는 것을.

 

  업무를 처음 맡았을 때의 막막함이 떠올랐다. 그 경험 덕에 리더로 선출되고 나서 ‘인수인계’가 제대로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누구나 맡은 일을 부담 없이 이어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려 했다. 그래서 정관을 손보고, 리더가 바뀔 때마다 인수인계하며 제대로 알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제안을 했지만 무산될 위기에 처해있다. 매번 인수인계를 하면서 “주어진 파일 안에 있으니 찾아봐.” 그 말 한마디로 인수인계가 끝나버리는 현실 앞에서 무력함을 느꼈다. 그들은 “자주 만나는데 물어보면 되지 않냐”라고 말하지만, 후배들은 쉽게 물을 수 없다. 결국 모두 제각각의 방식으로 일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시간이 흘러 적응된 사람들이야 자주 물어볼 수 있지만, 처음 들어온 이들은 그렇지 못하다. 무엇을 모르고 무엇을 아는지도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조직은 30년 전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형식은 달라졌지만 본질은 그대로다. 새로운 리더가 선출될 때마다 모든 것이 다시 바뀐다. 조직, 부처, 역할, 방식… 모든 것이 리셋된다. 전임자가 제대로 인수인계를 해주지 않거나, 자신도 자신의 일로 바쁘기 때문에 찾아보라는 말로 대신한다. 그들은 “내가 리더인데 내 마음대로 못하냐?”라고 했던 사람이다. 그런데 지금의 나보고 자신이 해서 결정한 사항들을 바꾸냐는 말로 비난을 한다. 자신들이 힘들어서 안 한 것을 하겠다는데 이렇게 비난을 한다. 그러면서 나에게 바쁘다면서 왜 이렇게 열심히 하냐고 한다. 이런 무슨 X 같은 소리인가? 내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인가?

 

나는 이제 떠나며 묻는다. “나는 무엇을 바랐던가?” 내가 바란 것은 단순했다. 함께 성장하는 곳이 되었으면 했다. 내가 돈을 받는 것도 아니고, 없는 형편에 돈을 쓰면서 다닌 곳이다. 그런 곳에서 나는 세상이 조금 더 밝게 빛나기를 바랐을 뿐이다. 그런데 그런 빛을 내야 하는 곳이 어둠 속에 있다. 성경에 이런 말이 있다.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가 악한데 선한 말을 할 수 있겠느냐? 사실 마음에 가득 찬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 나에게 하는 말인가 보다. 내 자신이 악하기에 선한 말을 던질 수 없나 보다. 내 마음에 가득 차 있는 이 악함을 이곳에 쏟아붓고 있나 보다. 그래서 조용히 그곳에서 나오려고 한다. 더 악해지지 않고, 조용히 밝은 세상이 오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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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근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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